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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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여년 전 발행된 대학 및 연구기관의 성지유적 조사 보고서를 보면 남한 지역 내에서 고구려성으로 비정된 경우가 별로 없다. 북한이나 중국의 고구려 유적 답사가 불가능한데다 와편에 대한 연구도 없어 신라 성으로 단정 짓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고구려 유적이라고 보는 견해에 보수적이다.

한강, 임진강 유역 고현(古縣)의 연혁을 보면 고구려지명이 없는 곳이 없다. 소백산을 넘어 영주지역까지 고구려 지명이 남아있다. 고구려 세력이 경상북도 지역 깊숙이 뻗쳤으며 경주가까이 진출했음을 알려준다.

필자는 70년대 초 지금은 고인이 되신 단국대 정영호박물관장과 충북 음성 망이산성을 답사한 일이 있었다. 망이산성은 ‘동이를 바라본다’는 뜻이며 고구려가 신라를 지칭할 때 동이(東夷)라는 표현을 썼으므로 고구려성으로 지목된 곳이었다.

능선을 따라 산성의 꼭대기에 올라가니 평원 같은 규모에 압도됐다. 성지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와 편과 토기편이다. 한반도 고대 성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와편이 수습됐다. 빨간색의 기와 조각들이었다. 당시 정 박사는 고구려 와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고구려 세력이 5세기 후반 한강을 지배한 후 남하해 음성에 거대한 성을 구축하고 남방 공략의 거점으로 삼은 곳이라고 했다. 필자는 이 성에서 적색의 고구려 와편을 만져보고 와편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그 후 30년간 신라, 백제지역 일대의 성지와 한강, 임진강변의 고대 성지를 답사했다. 최근 만 3년간 월간 글마루와 한국역사유적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임진강, 한강, 경기도, 강원도 소백산, 동해안 일대의 고대 성지를 조사했다.

경기도 포천시 속칭 반월성에서는 마홀(馬忽)이라는 명문기와가 출토된 바 있다. ‘마홀’이란 고구려 지명으로 큰 성을 뜻하며 일부 학자들은 ‘말갈’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성의 내부에서 많은 적색 와편을 조사할 수 있었다. 성 일부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건물터를 파헤쳐 드러난 와편들이었다. 백제의 유백색 연질 기와, 고구려 적색와편, 신라계의 기와편도 많이 조사됐다. 삼국시대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의 처절한 투쟁사를 담고 있는 유적임을 알려준다.

지난 11일 한국역사유적연구원은 춘천 봉의산성에서 드디어 7년 성지 조사의 숙원을 이뤘다. 이 성은 고구려 축성 양식이 완연한 유적이다. 조사단은 성안에서 수많은 고구려계 적색와편과 토기편, 그리고 정상 제단 추정지에서 예서체로 고구려 국명이 각자된 암반을 찾은 것이다.

지금까지 남한 지역 성지유적에서 고구려 명문 암반이 찾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글씨는 약 10여자로 ‘高句꡿城? ꡿守? 未尸’ 등이 확인돼 제사유적으로 판단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명문이 판독되리라 생각된다.

고구려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였다. 광개토대왕 시기 가장 드넓은 영토를 차지해 대륙을 위협했으며 612AD 영양왕(嬰陽王) 때는 수양제 100만 대군의 침공을 살수에서 대파한 위대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국가가 강하면 어떤 외세의 침략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고구려 역사는 입증하고 있다. 러시아 침공을 받고도 전 국민이 일치단결, 처절하게 국가를 지키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춘천 봉의산성 고구려 유적이 새삼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 산성에 대한 문화재 당국과 학계의 폭넓은 관심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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