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서
“온전히 뿌리내리도록 소임”
공수처 존속 의지 강조 해석
‘대외적 변화 큰 한해’ 진단
새 정부서 역할 축소 전망에
‘궁즉통’ 거론 전화위복 다짐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끝까지 소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공수처의 존폐론이 계속되는 가운데 단순히 본인의 임기를 넘어서 공수처의 존재도 유지시키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읽혀 관심을 모은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처장은 지난 16일 ‘사건사무규칙 개정에 즈음해 드리는 말씀’이란 제목으로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초대 처장으로서 저 역시 우리 처가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끝까지 제 소임을 다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 처장은 ‘주역’의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를 인용해 “일을 하다가 막히면, 즉 궁하면 변해야 하고, 그렇게 해서 통하면 장구할 것이라는 취지 같다”며 “저는 이러한 ‘궁즉통(窮則通)’의 정신은 올해 우리 처의 좌우명으로 삼을만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궁즉통’이란 궁하면 곧 통한다는 의미로, 공수처가 출범 1주년이 되자마자 존폐론에 시달리는 상황이지만 이를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는 김 처장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공수처에 대해 공약으로 공수처의 역할 축소, 더 나아가 공수처의 기능 회복이 안 될 경우 폐지까지 거론한 상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에서도 공수처에 파견직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공수처가 우선순위에 밀려 새 정부에서 ‘찬밥 신세’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공수처법 3조에 따라 공수처는 직무를 독립해 수행하고, 대통령 역시 공수처 직무행위에 관여할 수 없다고 규정해 인수위 파견이 꼭 이뤄져야 할 이유는 없다. 실제 독립성을 유지하는 대법원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등은 인수위에 파견인력을 보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헌법에 그 지위가 보장된 대법원·선관위와 공수처는 그 위상이 다르다.
이와 관련 김 처장은 “우리 처를 둘러싼 대외적인 환경에 큰 변화가 있는 한 해이지만, 그럴수록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굳건히 지키면서 우리가 할 일,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간다면 우리 처가 머지않은 장래에 뿌리내리리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 처장의 끝까지 소임을 다하겠다는 다짐은 단순히 자신의 임기를 말하는 것뿐만이 아닌 공수처가 역사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로도 풀이된다.
또 김 처장은 “잘 아시다시피 우리 처는 신설 수사기관으로 현재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며 “서산대사가 쓰시고 백범 김구 선생님이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애송했다는 한시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에 따르면 눈 덮인 들판을 걷을 때 어지러이 걷지 말아야 한다. 오늘 내가 남기는 발자취가 훗날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공수처가 존속되기 위해선 자신을 포함한 현 직원들의 발자취가 중요하다고 지적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김 처장은 “우리 처가 작년에 좀 어지러이 걸었던 것으로 국민들이 보시는 것 같아 되돌아보게 된다”고 반성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실제 공수처는 지난해 첫 출범한 공수처는 단 한명도 기소하지 못하면서 수사력에 의문부호를 제공했고, ‘인권친화적 수사기관’을 표방했음에도 오히려 전 방위적 통신조회로 인권침해 지적을 받았다.
아울러 김 처장은 삼가고 또 삼가는 마음가짐을 뜻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흠흠(欽欽)의 마음’을 인용하며 “흠흠의 자세는 수사기관에 근무한다고, 시간이 지난다고 몸에 배는 것은 아니고,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동시에 상대를 살피며 역지사지하는 마음가짐이 일상화돼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며 “이런 흠흠의 자세로 업무를 처리한다면 눈 덮인 들판을 어지러이 걷는 일은 결코 생기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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