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대전청사. (제공: 산림청) ⓒ천지일보 2022.2.11
정부대전청사. (제공: 산림청) ⓒ천지일보 2022.2.1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로 디지털 전환(DX)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교육 기관에 ‘1인 1스마트기기’를 지원하는 정책을 폈다. 천지일보는 해당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을 취재하고 교육청의 편파 행정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심층 보도를 기획했다. 제19보에서는 다수공급자(MAS) 계약의 맹점과 과도한 할인율을 단속하지 않는 조달청을 지적한다.

조달청 나라장터, 제품 등록 가격

표면적으로 “가장 싸다”고 하지만

실제 원가와 큰 차이 만드는 구조

“실효성 떨어지는 규제” 지적 나와

“규제 지키는 사업자만 억울해져”

[천지일보=손지아 기자] 국가에서 제일 저렴한 제품들이 공급된다는 조달청 나라장터에 ‘가격 뻥튀기’가 성행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부 사업자들이 매출원가와 크게 차이가 나는 가격으로 나라장터에 등록한 후 입찰 과정에서 높은 할인율을 제시해 큰 점수를 따내기 위한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조달청 나라장터에는 정부 기관이 나라에 필요한 물품을 가장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기 위해 사업자들과 단가 계약을 한 후 제품을 등록한다. 등록된 물품들은 수요 기관이 공고를 올릴 때마다 해당 제품으로 공공조달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때 건설 등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가 아닌 ‘단순 물품’ 공급이라면 통상적으로 ‘다수공급자(MAS) 계약’으로 입찰이 진행된다. 이는 가격 경쟁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가격이 싼 게 유리한 게 아니라 ‘할인율’이 중요하다.

최근 1년간 삼성전자 노트북 할인율. 삼성전자는 전라북도교육청, 경기도교육청 북부청사, 전라북도교육청(2차) 서울특별시교육청, 인천광역시교육청에 각각 45.5%, 45.2%, 44.4%, 43.3%, 41.9%의 할인율로 노트북을 공급했다. (출처: 제보자)
최근 1년간 삼성전자 노트북 할인율. 삼성전자는 전라북도교육청, 경기도교육청 북부청사, 전라북도교육청(2차) 서울특별시교육청, 인천광역시교육청에 각각 45.5%, 45.2%, 44.4%, 43.3%, 41.9%의 할인율로 노트북을 공급했다. (출처: 제보자)

◆“50% 넘나드는 삼성전자 노트북 할인율”

최근 1년간 삼성전자의 노트북 할인율 자료를 살펴보면 조달청 등록 가격과 실제 공급 가격 간 할인율이 40%를 넘어간다.

업계 관계자는 “치고 빠지기로 단종 예정상품 할인율이 더 큰데 조달에서 내려가서 단가 확인이 불가하다”며 “등록 가격은 이미 더 비싸게 돼 있었는데 이번에 조사에는 가격 인하를 이미 했다. 50% 넘게 할인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조달청이 단가 계약을 잘못한 것”이라며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노트북 입찰 경쟁에서 압도적인 할인율로 중소기업들을 몰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조달청 나라장터에서는 사업자들이 MAS 계약 입찰 참여를 대비해 가격을 높게 등록해놓는다. 때문에 조달청은 ‘나라장터 제품은 나라에서 가장 저렴해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걸면서도 실상은 원가 대비 굉장히 비싸게 가격이 산정된 제품을 승인해주게 된다.

◆충전 보관함 ‘역대급 뻥튀기+공급 차질’

해당 사업에서 필요한 스마트기기 충전 보관함도 300만원대의 조달 가격과 동떨어져 공급가가 100만원 초반대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원래 100만원대에 공급이 가능한 제품을 300만원대까지 가격을 올린 것이라는 의심이 나온다.

이는 할인율이 50% 이상에 육박하며 MAS 계약에서 ‘50% 이상 할인할 수 없다’는 규정을 어긴 것이다. 조달청이 단가 계약을 잘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50% 이상 할인할 수 있는 제품이면 사업자가 원가와 크게 차이 나게 적은 가격을 조달청이 승인해줬다는 것인데 이를 면밀히 살피지 않은 책임이 있다”며 “과도한 할인율을 제재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규정을 지키는 업체들만 불리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충전 보관함은 공급 차질이 심한 상태다. 다른 스마트기기 보급 일정에도 지장을 줄 정도다. 이 같은 현상은 비교적 앞서 사업 수행을 시작한 경기도교육청, 부산광역시교육청 등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는 충전 보관함에 필요한 반도체가 공급되고 있고 충전 보관함 업체의 생산량 자체가 공급을 맞출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교육청과 계약한 충전 보관함 사업자를 포함해 협상 계약을 맺은 사업자도 계약된 기간 내에 사업을 수행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이번 반도체 공급난으로 인해 충전 보관함 납품이 수개월은 더 지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달청 나라장터에 등록된 중국 레노버 태블릿PC. (출처: 나라장터 캡처)
올해 2월 기준 조달청 나라장터에 등록된 중국 레노버 태블릿PC. (출처: 나라장터 캡처)

◆‘가장 저렴해야 한다’는 규정 있지만 “글쎄”

이와 관련해 조달청 측은 “MAS 계약에는 ‘우대가격유지의무’ 조항이 있는데 이를 위반하면 거래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며 “나라장터에 등록되는 제품의 가격은 시장 가격과 동일하거나 그 밑이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우대가격유지의무’ 조항은 나라장터에 올린 제품을 사업자들이 시중에 더 저렴한 가격에 팔 수 없게 하는 규정이다. ‘나라에서 가장 싸다’는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제재지만 편법을 통해서는 피해갈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 브랜드 레노버는 같은 제품이지만 제품명만 살짝 변경해 시중에서 더 싸게 판매하기도 한다. 또 해외직구 쇼핑몰을 통해 조달청에 등록된 가격보다 30만원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아울러 일부 사업자는 어차피 나라장터에는 원가와 차이가 큰 가격으로 제품을 등록해야 하니 공공조달용 제품을 따로 만든다. 우대가격유지의무 조항을 지켜 시중에서 판매하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가 크게 떨어지는 제품을 내놓게 되는 격인데 그냥 팔지 않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이다.

때문에 이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 관계자는 “우대가격유지의무 조항도, 할인율을 지키는 것도 지키는 사업자만 억울하게 되는 것 같다”며 “조달청이 세금을 가지고 운영하는 만큼 국부 유출이 되지 않게끔 해외 사업자까지 규제할 수 있어야 하고 표면적인 부분만 모니터링하는 게 아니라 관련 제도를 정비해서 정말 저렴하고 공정한 나라장터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조달청에 등록된 레노버 제품을 시중에서는 1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쇼핑 캡처)
올해 2월 기준 조달청에 등록된 레노버 제품을 시중에서는 1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쇼핑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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