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결정이 미뤄지자 완성차 업계가 내년 1월부터 중고차 사업 진출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사진은 27일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 위치한 장안평중고차시장의 모습. ⓒ천지일보 2021.12.29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결정이 미뤄지자 완성차 업계가 내년 1월부터 중고차 사업 진출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사진은 27일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 위치한 장안평중고차시장의 모습. ⓒ천지일보 2021.12.29

중고차 개방 ‘3년째 공회전’

2022년 1월 시장진출 선언

인증 통해 품질보장·AS 향상

수입차브랜드와 역차별 해소

개인 매매상사 타격 불가피

“30% 정도는 나가떨어질 것”

[천지일보=정다준 기자] 완성차 업계가 내년 1월부터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정부가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결정을 미루자 완성차 기업들이 중고차 사업 진출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중고차 시장은 자동차 시장이 성장하면서 동반성장해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은 일부 악덕 업자로 인해 좋지 않다. 이에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서 중고차 시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지역사회에서 운영 중인 개인 중고차 매매상사의 경우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고차 시장 진출 선언한 완성차 업계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지난 23일 서초동 자동차회관에서 열린 ‘산업발전포럼’에서 “2022년 1월부터 사업자 등록과 물리적 공간 확보 등 중고차 사업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해 중고차 사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정 회장이 완성차 업계를 대표해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대신 말해준 셈이다.

정 회장은 부동산에 이어 제2 재산목록인 자동차의 잔존가치를 지키려는 소비자 보호와 급속도로 진행 중인 제조업의 서비스화에 합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완성차 업체들은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진입 요구와 글로벌 업체 간 경쟁 범위가 자동차 생애 전주기로 확대되는 점을 감안해 더 이상 중고차 시장 진출을 늦출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이 같은 선언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정 회장은 “향후 중소벤처기업부의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가 이뤄져 결과가 나온다면 그 결과를 따를 것”이라며 존중의 뜻도 밝혔다.

국내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 정부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완성차 업계의 진출이 제한됐었다. 이후 2019년 2월 지정 기간이 만료돼 국내 완성차 업계는 중고차 사업 진출 의사를 밝혔고 중기부의 결정만 남은 상황이다. 하지만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시장 진출 의지를 밝힌 지 3년이 지났지만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심의, 의결 법정기한(2020년 5월)은 이미 1년 7개월 이상 경과한 상황이다.

올해 하반기 중기부의 심의, 의결에서도 완성차 업계와 중고차단체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중고차 업계는 여전히 ▲신차 판매권 부여 ▲완성차 진입 3년 유예 ▲매집 제한 등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이에 협상은 결렬됐고 그간 수차례 중기부에 중고차 시장 진출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던 완성차 업계는 중기부가 결론을 내놓지 못하자 법적으로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문제가 없다는 점을 들어 본격적인 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앞서 정치권이 중재에 나선 ‘을지로위원회’를 통해 완성차 업체와 중고차매매상은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전체 시장의 10% 물량을 완성차 업계가 거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올해부터 매년 3%, 5%, 7%, 10%로 2024년까지 완성차 업계의 거래량을 논의했다.

문제는 양측이 바라본 시장 규모가 다르다는 것이다. 완성차 업계는 사업자 거래와 당사자 간 거래를 포함해 총 250만대 시장을, 중고차 업계는 사업자 거래만을 따진 110만대만 대상으로 쳐야 한다고 대립했다. 논의된 거래물량인 10%를 적용하면 25만대와 11만대의 차이다. 완성차 업계가 막판 23만대까지는 양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수입차 브랜드의 경우 일찍 인증 중고차 제도를 활용해 중고차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중기부의 결과만 기다리는 상황이다. 실제 수입 인증 중고차 물량은 해마다 늘어 일부 수입사는 현대차·기아를 제외한 나머지 국내 3사의 물량을 뛰어넘어 역차별 논란도 있다.

[천지일보=정다준 기자] 27일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 위치한 장안평중고차시장의 전경. ⓒ천지일보 2021.12.29
[천지일보=정다준 기자] 27일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 위치한 장안평중고차시장의 전경. ⓒ천지일보 2021.12.29

◆신뢰 잃은 중고차 시장

국내 중고차 시장은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제도적인 장치 마련했지만 국내 중고차 시장은 여전히 허위 매물을 비롯해 최근에는 중고차 대출 금융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 통계에 따르면 2018년 1월 1일부터 지난해까지 중고차 중개와 매매 관련 불만 상담 건수는 총 2만 1662건이다. 전체 품목 중에선 중고차가 5위를 기록했다.

또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작년 11월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고차 매매시장에 대한 소비자 인식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85%가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은 허위매물, 주행거리 조작 등으로 불투명하고 혼탁하다고 응답했다.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등 6개 시민단체가 연합한 교통연대는 지난 5월 중고차 시장 전면 개방을 촉구하는 범시민 온라인 서명 운동 10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증거다. 

중고차를 6년 동안 타고 있다는 김연일(30, 남)씨는 “중고차를 구입하고 보니 차량 부품 중 하나의 볼트가 풀려져 있었다”면서 “중고차 구입 당시 정보가 제대로 오픈돼 있지 않아서 사기를 치는 것은 아닌지, 제값을 주고 사는 것이 맞는지 등 불신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 중고차를 구입한 박동진(32, 남, 가명)씨는 “완성차 업체도 사업하러 중고차 시장에 들어오는 거라 남겨 먹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완성차 업체가 들어오면 사기 위험 걱정은 없을 거 같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설상가상’ 개인 매매상사 

지역사회에서 운영 중인 개인 중고차 매매상사는 엎친 데 덮친 격인 상황이다. 중고차 시장에 SK엔카, 케이카, 인증 중고차 등 큰 기업들이 이미 들어와 어려운 상황인데 공룡기업인 완성차 업체까지 진출을 선언해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소규모로 중고차 매매상사를 운영 중인 이진모(29, 남, 가명)씨는 “이미 어려운 상황이지만 완성차 업체가 들어오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면서 “거의 확실한 얘기지만 완성차 업체가 들어오면 개인 상사들은 30% 정도는 나가떨어질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우선 차를 확보하는 것부터가 문제”라며 “중고차를 팔려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돈을 더 주는 업체를 선택할 텐데 그런 면에선 기업들은 자금이 넉넉하니 개인 상사는 상대가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그러면서 “개인 상사마다 지역 내에서 세차장, 용품점, 카센터, 타이어 등 거래하는 곳이 있다”며 “개인 상사들이 어려워지면 지역 경제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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