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신창원 기자] 인천시 남동구의 한 음식점 앞에서 한 사원이 배달음식을 오토바이에 싣고 있다. ⓒ천지일보DB
[천지일보=신창원 기자] 인천시 남동구의 한 음식점 앞에서 한 사원이 배달음식을 오토바이에 싣고 있다. ⓒ천지일보DB

재촉, 건별 수수료가 사고 높여

“배차 3분 만에 가도 늦었다 해”

배달플랫폼, 안전조치 의무 어겨

배달이용자 인식·행동 변화 필요

[천지일보=안채린 수습기자] 최근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교통사고를 경험한 배달 종사자가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종사자들의 안전 보장이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6일 발표한 음식 배달플랫폼 사업장 점검 결과에 따르면 플랫폼 종사자 중 배달 근로자의 산재 건수는 2016년 396건에서 지난해 2255건으로 5.7배 급증했다. 또 배민라이더스, 쿠팡이츠, 바로고 등 6개 배달플랫폼 업체에 등록된 종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5626명 중 약 47%가 배달 중 교통사고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달 종사자들이 배달을 서두르는 이유로는 다음 주문 수행을 위해서가 65%(3648명)로 가장 많았고 배달 재촉은 28%(573명)를 차지했다. 응답자 5626명 중 무려 4858명(86%)이 업무 도중 ‘배달 재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누가 배달을 재촉했나’라는 질문(중복 응답)에 대한 답변으로는 배달을 맡긴 음식점(4189명)이 가장 많았으며 주문 고객(3772명), 지역 배달 대행업체(1690명), 배달플랫폼 업체(1558명)가 뒤를 이었다. 특히 배달 재촉을 경험한 경우 배달 중 사고를 경험한 비율이 약 47%였던 반면, 배달 재촉을 경험하지 않은 경우 배달 중 사고를 경험한 비율은 약 23%로 절반 이상 낮게 나타났다.

배달 종사자들은 배달 재촉이 종사자들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입을 모았다.

27일 배달 종사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배달세상’ 게시판에는 ‘**고센 재촉’ 이라는 게시글이 올라와 있었다. 배달 종사자인 작성자는 “날이 너무 추워서 시동이 안 걸려 고생하고 있는데 고객센터에서 언제 갈 수 있냐고 재촉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해당 게시글에는 “고객센터는 사정도 모르면서 빨리 가라고만 한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또 다른 작성자는 “배달이 너무 안 왔다며 고객이 가게로 음식을 찾으러 왔다”면서 “음식점주도 한 소리 하는데, 나는 배차받고 3분 만에 온 거였다”고 토로했다. 

이 밖에도 “예상 배달 시간을 조금만 넘어도 배달플랫폼에서 5분에 한 번씩 연락이 온다” “부랴부랴 픽업해서 가는데 도착 직전에 취소하는 일도 다반사”라는 내용의 게시글도 있었다.

해당 온라인 커뮤니티뿐 아니라 배달 종사자들의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배달 재촉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었다.

실제 배달 종사자로 2년째 일하고 있는 김모(29, 남)씨는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배달이 조금만 늦어도 취소하고 욕하고 화내는데 마음이 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또 배달 건 별로 돈을 받기 때문에 종사자들도 최대한 많이 배달하려다 보니 서두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래도 지금은 서로서로 최대한 교통법규를 지키면서 배달하자고 격려한다”며 “교통사고를 한 두번 겪어본 사람은 돈을 아무리 벌어도 안전이 제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수도권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다음 날인 19일 서울시에서 배달 일을 하는 한 종사자는 자신의 SNS에 “두 번 미끄러지고 이제 그만 퇴각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김씨는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도 무리하지 않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며 “날씨가 안 좋은 날에는 고객들도 배달보다는 포장을 이용하고, 배달이 오래 걸려도 항의하지 않는 등 많이 배려해주는 방향으로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배달 종사자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이들을 고용한 플랫폼 업체의 부실한 안전점검에도 비판이 제기됐다.

스마트폰 앱 등을 통해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음식점과 배달 종사자를 상호 중개하는 업무를 하는 음식 배달플랫폼 업체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배달 종사자에게 적합한 안전모가 있는지 확인할 의무 등이 있다.

또한 플랫폼 앱을 운영하면서 배달 종사자와 계약 등을 체결하고 직접 배달업무를 수행하는 배달플랫폼 업체 역시 안전모 확인과 종사자 대상 안전보건교육, 비정상 작동 이륜차 탑승 금지 지시 등을 해야 한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28개 배달플랫폼 업체를 점검한 결과 12개 업체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위반사항에 대한 과태료를 부과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가장 많이 적발된 위반사항은 ‘안전모 확인’이었으며 종사자의 이륜차 정비상태를 확인하지 않았거나, 종사자에게 안전운행 관련 사항을 알리지 않은 업체 등도 적발됐다. 다만 종사자의 사고를 유발할 정도로 배달 시간을 제한하는 배달플랫폼 업체는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해 한국교통안전공단의 교통문화지수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륜차 사망사고의 주요 원인은 머리 상해(41.3%)로 나타났다.

배달 종사자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은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려했던 것들이 이번 통계조사로 확인된 것”이라며 “플랫폼 업체들은 배달 종사자들의 안전을 위해 어떠한 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인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한강공원 배달존에 시민들이 모여 있다. ⓒ천지일보 2021.10.2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여의도한강공원 배달존에 시민들이 모여 있다. ⓒ천지일보DB

뿐만아니라 배달 건수로 수수료를 받는 수입 구조와 배차 수락률이 높은 종사자에게 먼저 배차하는 배달플랫폼의 AI 알고리즘 탓에 배달 종사자들이 쉴 틈 없이 배달을 소화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배달 종사자 최호준(가명, 44)씨는 천지일보에게 “AI로 콜이 오는데 너무 먼 거리에서 들어올 때가 많다”며 “하지만 콜을 거부하면 배차 수락률이 떨어져 더 이상 콜이 들어오지 않을까봐 그냥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수익 대부분이 오토바이 기름값이나 유지비로 들어간다”며 “하루에 적어도 40콜은 받아야 하고 돈이 없을 때는 배차가 들어오는 대로 다 받아서 하루에 80~90콜 뛸 때도 있다”고 했다.

라이더유니온에 따르면 지역의 동네배달업체에서 일하는 배달 종사자들의 배달료는 10년째 오르지 않고 있으며 대형 플랫폼 업체들은 시간·사람에 따라 배달료를 달리하고 있다. 또한 배달 종사자가 AI알고리즘 배차를 거절하면 종사자의 평점이 내려가고, 이 평점을 바탕으로 등급을 매겨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배달 종사자가 배차를 거절하기 꺼려한다고 설명했다.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종사자들은 배달 수익을 얻기 위해서 무리한 배달을 할 수밖에 없다”며“안전 배달료가 도입된 다음에 교통법규 단속이 병행돼야지 안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신호를 위반할수록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구조”라면서 “신호를 지키며 안전하게 운전했을 때 소득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증가하고 있는 플랫폼 종사자의 안전하고 건강한 일자리 조성을 위한 노력이 중요한 시점”이라며 “배달플랫폼 산업의 경우 플랫폼 업체, 배달 대행업체, 음식점주, 주문고객, 종사자 본인 등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종사자의 안전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배달 종사자 안전을 위해 모든 플랫폼 이용자의 인식과 행동에 변화가 필요하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우리 사회에 안전 배달 문화가 자리 잡아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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