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외무상이 9월 29일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후 손을 흔들고 있다. 기시다 총재는 오는 4일 소집되는 임시 국회에서 차기 총리로 선출된다. (출처: 뉴시스)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외무상이 9월 29일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후 손을 흔들고 있다. 기시다 총재는 오는 4일 소집되는 임시 국회에서 차기 총리로 선출된다. (출처: 뉴시스)

자민당 총재로 기시다 후미오

일본 100대 총리로 선출

6년 전 위안부 합의 주도

아베와 정책·기조 비슷해

자민당에 ‘민심 무시’ 비난↑

“안정 택해… 기성세력 승리”

[천지일보=이솜 기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한일 합의의 당사자인 기시다 후미오(64) 신임 자민당 총재가 다음주 100대 일본 총리로 취임한다.

전임 스가 요시히데 내각을 1년여 만에 대체하는 기시다 정권의 기본적인 정책 방향은 기본적으로 아베 신조 정권을 계승하고 있으나 일부 분야에서는 변화의 조짐도 있다.

그는 한일관계를 중시해 온 비둘기파로 평가되지만 대한 강경파로 알려진 만큼 당장 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자민당이 당의 안정을 위해 편리한 인물을 선정했다며 민심을 저버린 결과란 지적도 나온다.

◆3대 정치명문가… 금수저 출신

기시다는 지난달 29일 치러진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을 87표 차이로 크게 누르고 제27대 총재로 당선됐다.

자민당이 중의원에서 단독 과반을 차지하고 있고, 참의원에서도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손잡고 과반을 점하고 있기 때문에 총재가 된 기시다는 오는 4일 소집되는 임시 국회에서 차기 총리로 선출된다.

1993년 첫 당선 후 한 번도 낙선된 적이 없는 9선 중의원 기시다는 자민당 거물 정치가들과 마찬가지로 정치 명문가의 ‘금수저’ 출신이다. 조부와 부친부터 중의원을 지낸 3대째 정치가 집안이다. 기시다는 동료 정치인들 사이에서 침착하고 정직하다는 평판을 받고 있다. 특별히 당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 온건파라는 평가다.

한국에 있어서 기시다는 외무상 재임 중이던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의 일본 측 당사자로 알려져 있다. 아베 당시 총리가 자신의 지지 기반인 보수층의 반발을 우려해 위안부 합의를 망설였으나 기시다가 이를 설득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파기되고, 기시다 자신도 아베 전 총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대한(代韓) 역사관을 가지고 있어 한일관계 개선에도 큰 기대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신임 총재가 지도부 선거에서 승리한 후 연 기자회견이 9월 29일 일본 오사카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방영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신임 총재가 지도부 선거에서 승리한 후 연 기자회견이 9월 29일 일본 오사카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방영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아베 정책 비슷… 경제부양책 주목

기시다 총재는 아베 전 총리가 이끌었던 우익 세력보다는 더 비둘기파라는 평판을 얻었으나 일부 강경한 부분도 있다. 전직 외무장관 출신인 만큼 국제 관계 관리에 있어서는 뚜렷한 노선이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그가 미국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중국에 대한 방벽을 만들기 위해 호주, 인도와의 동맹을 계속 구축할 것으로 보고 있다.

히로시마 의회 대표로서 기시다는 핵무기에 반대해 왔지만 원자력 발전소의 재가동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해왔다. 코로나19에 대해서는 백신 접종 인구가 60%를 넘어가는 만큼 스가 총리를 쓰러뜨린 압력에서는 벗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눈에 띄는 선거 공약은 중하층 소득 증대와 대유행으로 큰 타격을 입은 시민과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수백조억원 규모의 경제 패키지를 포함한 ‘새로운 자본주의’이다. 경제 정책의 골격으로는 아베노믹스의 틀을 대체적으로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재는 고령화, 인구 감소, 기후변화와 같은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은 거의 제시하지 않았다. 앞서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인간의 활동이 지구온난화를 야기한다는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다며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애매한 답을 내놨다.

◆대중 선호 무시한 ‘회전문 총리’ 반복

기시다의 첫 도전은 중의원 선거다. 기시다 총재가 총리에 취임하면 곧바로 내각을 발족하고 중의원을 해산해 총선거를 대비할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현재 중의원의 임기가 오는 21일에 끝나므로 총선은 11월 28일까지 실시돼야 한다. 이에 따라 총선은 11월 7일이나 14일에 치러진다.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기시다 총재는 강력한 권한을 갖거나 스가 총리와 같이 짧은 재임 기간에 그칠 수 있다.

무엇보다 기시다 총재가 당면한 과제는 당과 내각의 지지율을 올리는 것이다. 스가 총리의 실패한 코로나19 정책 하에서 자민당에 대한 지지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반면 기시다의 라이벌이였던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상은 확고한 정책들을 내세우며 차기 총리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유권자 선호도 1위를 차지해왔는데, 이에 일각에서는 자민당이 대중의 선호를 무시한 선택을 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결과를 두고 자민당이 ‘회전문 총리 역사’를 반복했다고 비판했다. NYT는 “당 엘리트들이 민심을 무시한 채 인기 없는 스가 총리와 차별을 두지 않는 후보를 선택했다”, “과감한 해결책을 제시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후보를 선출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자민당이)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보다 안정성에 미래를 맡겼다”며 기시다 총재를 ‘미스터 현상유지’라고 부르기도 했다.

모넥스그룹의 전문 이사인 제스퍼 콜은 아사히 신문에 이번 선거를 두고 “기성세력의 승리”라며 “기시다는 (자민당에 있어) 안정을 의미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배를 흔들지 않고, 고위 관료들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