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한 30대 청년의 부엌에 배달음식과 설거지가 잔뜩 쌓여있다. (제공: 에버그린)
고독사한 30대 청년의 부엌에 배달음식과 설거지가 잔뜩 쌓여있다. (제공: 에버그린)

집안 가득 쾌쾌한 냄새 진동

부엌엔 먹다 남은 배달음식

누웠던 바닥엔 핏자국 선명

“코로나 이후 더 많이 발생”

“매일 2·3건 특수청소 문의”

[천지일보=윤혜나 인턴기자] “유족들을 참관이라도 시켜서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어요. 가시는 길이라도 편히 가시라고 항상 초를 가져와 청소 시작 전 간단한 제사를 지냅니다.”

인천의 한 아파트 8층. 고요한 복도 중간 한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소독약으로도 덮이지 않는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맡는 순간 이마가 찌푸려졌다. ‘쾌쾌한 냄새’로 표현하기에도 부족했다.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쓸쓸한 죽음(고독사)을 맞이한 30대 남성 김모씨가 머물던 집이었다. 지난달 27일 기자가 특수청소업체와 함께 방문한 김씨의 집엔 그가 어렸을 때 갖고 놀았을 법한 여러 장난감이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를 추억할 사람은 남아있지 않았다. 김씨는 그저 흔적만을 남겨둔 채 사라졌다.

그가 발견된 것은 며칠 전 김씨의 형이 오랜만에 동생을 보기 위해 집을 찾으면서였다. 집에서 형을 반기는 건 싸늘한 모습의 김씨와 악취뿐이었다. 가족들은 특수청소업체에 고인의 흔적 처리를 부탁했다.

[천지일보=윤혜나 인턴기자] 특수청소업체가 고독사한 30대 청년의 집 소독을 마무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9.24
[천지일보=윤혜나 인턴기자] 특수청소업체가 고독사한 30대 청년의 집 소독을 마무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9.24

◆홀로 사망한 지 2주 넘어 발견

현장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김씨가 누워있던 자리였다. 이미 몇 번의 냄새 제거 과정을 거친 상황이었지만 시신이 썩고 오래 방치돼 있던 터라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바닥에는 핏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주위에는 갈색 구더기와 유충도 보였다.

업체 측에 따르면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더 심각했다. 부엌에는 먹다 남은 음식들이 가득했다. 대부분 배달음식이었다. 설거지를 하지 않은 지 오래됐는지 한쪽에는 그릇들이 쌓여 있었다.

김씨는 사망한 지 2주가 넘은 것으로 추정됐다. 곳곳에 보이는 죽은 파리들이 이를 유추하게 했다. 사람이 죽으면 몸속에 가스가 차오르며 복부가 팽창한다. 시간이 지나 가스와 체액이 몸에 있는 구멍들로부터 흘러나와 방안에 스며든다. 그곳에 벌레가 꼬이면서 구더기가 발생하고 유충과 파리가 생긴다.

김씨의 핏자국은 화장실까지 이어져 있었다. 주형길 에버그린 특수청소업체 실장은 “심장병과 관련된 약이 있는 것을 봤다”며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심장마비가 와서 현관으로 나가려 하다가 부엌에서 쓰러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죽음을 앞두고 김씨가 느꼈을 고통과 두려움이 짐작케 되는 부분이었다.

집 안에서는 고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엿볼 수 있는 물건이 많았다. 평소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지 여러 스포츠용품이 보였다.

그의 장롱에는 군데군데 헤진 옷가지들이 걸려 있었다. 직원은 고인의 옷을 포대 속에 담았다. 많은 옷가지에서 유독 군복이 눈에 띄었다. 업체 측에 따르면 함께 발견된 전역증으로 보아 과거 직업군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천지일보=윤혜나 인턴기자] 고독사한 30대 청년의 유품을 특수청소업체 직원이 정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9.24
[천지일보=윤혜나 인턴기자] 고독사한 30대 청년의 유품을 특수청소업체 직원이 정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9.24

◆집주인, 집값 염려로 조용히 처리 요구

아파트에서 그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집주인이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 조용히 일을 처리하길 부탁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이 집에 어떤 사람이 살았고 어떻게 떠나갔는지조차 모른 채 평소와 같이 지내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주 실장은 혹시라도 주민들이 이 일을 알아챌까 해서 친구 집에 놀러 온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옷을 입고 매번 향수를 뿌려 냄새를 가린다고 했다.

고독사 현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를 떠올린 김현섭 에버그린 대표는 “문 너머에 뭐가 있을지 몰라 집 문을 열기 전 많이 긴장되고 겁도 났다”며 “많은 현장을 접하면서 ‘우리 주위에 죽음과 관련된 일이 이렇게나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매일 2~3건의 특수청소 문의를 받는 그는 이제 방 안에 가득 찬 혈흔을 봐도 아무렇지 않다고 한다.

김 대표는 고독사 문제에 대해 “돌아가신 분들이 죽음에까지 이르지 않을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주변이나 지자체 또는 국가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며 “특히 최근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사회와 단절되면서 이런 현상이 더 발생하는 것 같다”고 했다.

◆유가족, 재산 갖고 싸우는 경우도

고독사 중 시신을 인수할 사람이 없는 상태인 무연고사의 경우 책임의 몫은 모두 집주인에게 돌아간다. 김 대표는 ‘왜 내 집에서 죽어서 돈 나가는 거냐. 이런 쓸데없는 일이 왜 나에게 있는지 모르겠다. 너무 힘들다’는 임대인의 이야기도 들어봤다며 한탄했다.

이번 고독사는 평화롭게 마무리된 경우였다. 주 실장은 “보통 고인의 유품 청소 의뢰가 들어오면 유족 중 슬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통장이나 돈 되는 좋은 거 있으면 나한테 와라’면서 재산을 갖고 가족끼리 싸우는 경우도 봤다”고 했다. 이외에도 청소 후 비용을 흥정하려는 유족도 있고 끝까지 받지 못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약간의 격양된 목소리로 “유족들에게 참관이라도 시켜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다”며 “그래서 항상 초를 가져가 청소를 시작하기 전 간단한 제사를 지낸다”고 말했다. 고인의 죽음에 슬퍼하는 건 가족도 아닌 청소업체 직원이었다.

한편 KBS 시사직격 ‘2021 청년 고독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년간 발생한 전국 변사사건의 10만 4845건을 분석한 결과, 전국에서 시신이 훼손될 정도로 부패한 채 발견된 고독사는 2019년 3704건, 작년 4196건이다. 지난해 일평균 11명이 홀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지난해 지역별 고독사 발생 건수는 경기 1072건, 서울 790건, 부산 276건 등으로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서울시에선 30대 이하 청년들의 고독사 비율이 약 10%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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