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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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민속 씨름을 새롭게 이해하게 된 것은 십수 년 전 오주석(1956~2005)의 대표적인 명저 ‘한국의 미 특강’을 읽고 나면서부터였다.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출신의 오주석은 이 책에서 조선시대 후기 천재화가 김홍도의 역작 ‘씨름도’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설을 해줬다.

김홍도의 ‘씨름도’는 조선시대 시장 장터에서 벌어지는 씨름의 결정적인 장면을 그린 것이었다. 오주석은 장터에서 벌어지는 씨름 구경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양반과 서민, 아이와 노인 등 여러 계층과 나이를 대비시켜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씨름 장면을 통해 당시 사회의 일상사를 엿보게 해주는 관점을 제공했던 것이다. 오주석의 주장에 따르면 옛 그림은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지난 17일부터 22일까지 충남 태안군 태안종합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2021추석장사 씨름대회를 KBS TV 중계를 통해 봤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열린 이 대회에서 각 체급별 장사와 단체전 우승팀이 배출됐다.

씨름 대회는 매년 명절 때마다 주요 대회 일정을 맞춰 열리는 게 일반적이다. 설날과 추석 한가위에는 명절 분위기에 맞춰 씨름 대회가 열린다. 하지만 지난해 초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 시작하면서 명절에 열리는 씨름 대회는 썰렁하기만 하다. 관중들 입장이 금지되면서 씨름 선수와 관계자, TV 중계진만이 대회장을 지키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는 씨름 이외에도 프로야구, 프로축구 등 여러 종목 스포츠가 열렸다. 프로야구는 막판 페넌트레이스가 펼쳐지며 플레이오프 진출팀을 가렸고, 프로축구도 리그 막판 순위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했다. 프로골프는 푸른 골프장에서 여자와 남자대회가 열렸다. 해외에선 미국 메이저리그와 유럽 프리미어리그 등이 펼쳐졌다.

메이저리그의 한국인 선수 류현진, 김광현, 최지만, 김하성, 박효준 등의 활약이 눈길을 끌었으며, 프리미어리그의 손흥민과 황희찬 등에게 관심이 모아졌다.

씨름이 명절스포츠로 여러 종목과 경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1980~1990년대 씨름 전성기 시절이 생각났다. 당시 씨름은 최고 인기 프로스포츠였다. 야구, 축구 등이 결코 부럽지 않았다. 이만기, 이봉걸, 이준희 등 이른바 트로이카 체제가 만들어지면서 씨름은 큰 인기를 모았다. 이들을 이어 강호동, 이태현, 최홍만 등이 개성 있는 스타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당시 최고의 명절스포츠로 자리잡은 씨름은 전통 한복을 입고 경기를 관전하는 스포츠로 자리를 잡아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된서리를 맞은 씨름은 여러 프로씨름단이 해체되고 유망주들이 떠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프로씨름계가 철퇴를 맞고 씨름계의 파벌싸움까지 겹치며 씨름은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됐다.

2000년 이후 씨름은 더 이상 반전의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대회를 열지 못하고 지방으로 전전하는 ‘유랑극단’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씨름은 변변한 전용 체육관 하나 갖고 있지 않다. 대중들은 명절 때에나 TV를 접하고 있을 정도이다. 씨름이 전통 스포츠로 다시 사랑을 받기 위해선 씨름인들이 전통 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오주석이 옛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선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고 말하듯이 대중들이 어릴 적 향수를 생각하는 관심과 따뜻한 마음으로 씨름을 대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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