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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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학교 폭력(학폭) 논란을 야기한 여자배구 이재영·다영(25) 쌍둥이 자매는 마치 유배를 떠나듯 그리스로 갈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그리스 진출을 원하는 둘의 국제이적동의서(ITC)를 직권으로 발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유배라는 말을 쓴 것은 원치 않는 출국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둘은 결코 좋아서 해외로 나가는 게 아니다. 선수 생활을 계속하고 싶지만 국내에서는 더 이상 뛸 무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게 낯선 그리스로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해외무대인 그리스로 떠나게 되면 사회적 물의를 빚어 국내에서 설 자리를 잃은 선수들이 외국에서 도피처를 찾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V리그 여자부 간판스타였던 쌍둥이는 2020~2021시즌이 진행 중이던 지난 2월 학폭 가해자로 지목됐다. 옛 동창생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이들이 중학교 재학 시절 수차례 폭력을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파장은 대단히 컸다. 여론의 무서운 질타를 받으며 소속팀 흥국생명은 무기한 출전정지, 대한민국배구협회는 국가대표 영구 박탈 징계 결정을 내렸다. 둘은 흥국생명에서 2021~22시즌 선수 등록 철회를 버리는 바람에 국내 무대에 당분간 발을 디딜 수 없게 됐다. 둘은 선수생활을 국내에서 더 하고 싶었다. 하지만 좀처럼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사과와 자숙이 많이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따라서 배구협회도 둘에 대한 징계를 좀처럼 풀어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국내 무대에서 뛰는 것이 여의치 않자 둘이 생각한 것은 해외 무대 진출이었다. 둘은 지난 6월 터키 스포츠 에이전시 CAAN을 통해 그리스 빅클럽 PAOK 입단을 타진했고, 대한민국배구협회에서 그리스 이적에 필수적인 ITC 발급을 거부하자 FIVB로 경로를 우회해 ITC 직권 승인을 요청했다. FIVB는 선수 보호차원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둘의 그리스 이적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고 한다. 배구협회는 선수 국제 이적 규정에서 ‘대한올림픽위원회(KOC), 협회, 산하 연맹 등 배구 유관기관으로부터 징계처분을 받고 그 집행 기간이 만료되지 아니한 자, (성)폭력, 승부조작, 병역기피, 기타 불미스러운 행위로 사회적 물의를 야기했거나 배구계에 중대한 피해를 끼친 자’의 해외 진출의 자격을 제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학폭 논란을 야기한 쌍둥이 자매는 이 조항의 적용 대상이라 해외 진출 자격을 제한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FIVB가 그간 ITC 발급과 관련한 여러 분쟁 사례 등을 검토해 신중하게 결정하느라 최종 결정이 지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둘은 국내서 받던 연봉의 10분의 1 수준을 받고 그리스 팀과 계약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리그는 터키나 이탈리아에 비하면 수준이 한참 떨어지고 국내보다는 여건이 훨씬 안 좋아 기량 향상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한다. 이들이 이번에 그리스로 나가면 앞으로 국가대표는 물론, 국내리그로 복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듯하다. 국내에서 좀 더 인내와 끈기를 통해 자숙의 시간을 갖기보다는 해외행을 선택한 둘이 얼마나 오랫동안 활약할지는 알 수 없다. 모든 결정은 본인들이 내렸기 때문에 다가올 결과에 대해선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이다. 하지만 쌍둥이 자매가 해외로 떠나는 것을 바라보는 팬들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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