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절망.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임신기 근로단축 요청 거절

임신하면 자발적 퇴사 종용

육아휴직, 100명 중 8명뿐

전문가 “권리보장 우선돼야”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1. 입사 후 2년 정도 지나 임신을 하게 됐습니다. 임신 8주 차 때 병원에서 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아 임신단축근무제도 신청을 했습니다. 팀장은 이를 거부하면서 그냥 회사에서 쉬면 안 되겠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선 쉴 수 없었고, 오히려 업무량이 많아져 초과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통증이 계속돼 다시 한 번 단축 근무 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하고 며칠 뒤 계약 만료 통보를 당했습니다.

#2. 육아휴직을 신청하려고 하니 면담 자리에서 “육아휴직 쓰면 너 인생 망하게 해준다. 사람 흥하게 해주긴 어려워도 망하게 해주기는 쉽다” 등의 말을 하며 협박했습니다. 휴직하고 나서는 확인서를 한 달이 넘도록 발급해주지 않아 수당을 받지 못했습니다.

#3. 10년 가까이 근무했는데 지금까지 회사에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제대로 사용한 노동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회사에서 임신 이후에 자회사로 소속을 옮겨달라고 요청해서 퇴사 후 재입사 절차 진행해서 자회사로 옮겨서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출산이 몇 달 남지 않았는데 출산휴가 급여를 받을 수 있나요?

출산 전후 휴가나 육아휴직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올해 8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만 8세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상용직 부모 중 육아휴직 사용 비율은 8.4%이고,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 비율은 2.2%에 불과했다.

13일 이러한 내용이 담긴 ‘모성보호 갑질 보고서’를 발행한 ‘직장갑질119’는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적인 상용직 노동자 100명 중 8명만 육아휴직을 사용했다는 조사결과는 육아휴직 사용이 대부분의 노동자에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육아휴직 제도 인식율 32%에 불과

직장갑질119는 ‘아름다운 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팀을 구성해 작년 7월부터 올해 4월 30일까지 접수된 모성 갑질 사례와 유형별 문제점을 분석했다.

그 결과, 10년 동안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제대로 사용한 노동자가 1명도 없는 회사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출산을 하면 자발적으로 퇴사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출산휴가만 사용하고 복직해도 진급에서 누락시키는 불이익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남녀고용평등법,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등 ‘모성보호 3법’에 임신·출산·육아 9대 권리가 보장돼 있다. 대부분 고용보험에서 급여가 보장된다.

기간별로 보면 ▲출산전후휴가 90일 ▲유산·사산휴가 5~90일 ▲배우자 출산휴가 10일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1일 2시간 ▲난임치료휴가 연 3일 ▲육아휴직 남녀 각각 1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주 15~35시간 ▲가족돌봄휴직 연 90일 ▲가족돌봄휴가 연 10일 등이다.

하지만 ‘2019 일가정양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체 인사담당자 중 ‘육아휴직 제도의 인지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라고 답한 비율은 32.0%에 불과했다. ‘출산전후휴가제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라고 답한 비율만 53.5%로 상대적으로 높을 뿐 나머지 제도의 인지도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많은 기업·직장인이 9대 권리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직장갑질119 제보사례를 살펴보면 어렵게 임신에 성공해 법이 보장하는 임신기 근로시간단축을 요청해도 거절당는 사례가 있었다. 오히려 법에 금지된 초과근무와 야간근무를 강요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근로기준법 제74조 제7항에 따르면,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노동자가 신청할 시엔 1일 최대 2시간의 범위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불이익 신고건수, 연평균 36건에 그쳐

그렇다면 ‘육아휴직 불이익’은 제대로 처벌되고 있을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수진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8~2020년) 전체 육아휴직자(31만 6431명) 중 34.1%(약 10만 7894명)는 복직 후 6개월이 지나야 수령할 수 있는 육아휴직 사후지급금(210~457만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기간 ‘육아휴직 불이익(고용평등법 제19조 제3항 위반)’ 신고 건수는 108건, 연평균 36건에 불과했다. 매년 직장인 약 3만 5965명이 육아휴직 후 퇴사를 하고 있는데 이 중 0.1%인 36명만이 육아휴직 불이익으로 신고했다는 것이다.

육아휴직 후 직장에 복귀하지 못하는 비율이 34.1%에 달함에도 육아휴직을 사유로 한 불이익 조치에 대한 신고 건수가 극히 저조하다는 사실은 현행 규율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이진아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괴롭힘 사례들은 직장갑질 119에 끊임없이 제보되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이유로 한 불이익 신고 건수는 아주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고가 적은 이유는 불이익에 대한 입증이 어려울뿐 아니라 입증된다고 하더라도 결과가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권리보호로 끝나지 않고, 사업주나 동료들의 입증하기 어려운 괴롭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불이익에 대한 처벌뿐 아니라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호될 수 있도록 노동부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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