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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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지속적인 확산으로 ‘집콕’하는 시간이 늘며 일상의 지루함을 풀고 마음의 평온을 가다듬어보려 자주 산책을 해오던 중, 지난 1월 1일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과제를 정해 100일 동안 수행해보자는 ‘100일 프로젝트’에 ‘만보 걷기’로 참여해 9월 1일부터 3단계 100일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산책 시 주로 걷는 길은 아파트 단지의 쪽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마주하는 매봉산 둘레길이나 10분 정도 걸으면 접하는 양재천변길이다.

지난 일요일 아침 아파트 쪽문을 열고 나가 매봉산 둘레길을 걷던 중 숲속에서 무얼 줍고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래서 무엇을 줍고 있는 것일까 하고 곁눈으로 살펴보니 숲 안쪽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를 줍고 있는 것이었다.

산책길을 걸으며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들을 보며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 다람쥐/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간다/ 다람쥐야~ 다람쥐야 재주나 한번 넘으렴/ 파~알딱 파~알딱~ 팔딱 날도 참말 좋구나”라는 동요 ‘다람쥐’ 가사와 함께 전에 썼던 글의 주제 ‘도토리 6형제’가 떠오른다.

​‘도토리 6형제’로 불리는 ‘참나무 6형제’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고 있는 대표적 낙엽성 식물인 참나무속(Quercus)에 속하는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등 6종의 참나무를 일컫는 말이다.

‘참나무’란 명칭은 한 종(種)의 식물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6종의 참나무를 통칭하는 용어로, 이들을 ‘참나무 6형제’로 함께 엮어 부르는 이유는 같은 속 식물인 이 종들이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참나무 형제들은 형제끼리 서로 연을 맺기도 하는데, 한 예로 떡갈나무와 신갈나무 사이에 연이 맺어지면 ‘떡신갈나무’로 불리는 아종(亞種)이 생겨난다.

참나무 6형제 중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에는 참나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에는 참나무란 말이 없는데, 이렇게 다양한 참나무 형제들의 명칭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는 것일까.

참나무 이름이 붙어 있는 3형제 중 ‘갈참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가을 늦게까지 잎이 달려있어 붙여진 ‘가을참나무’에서 유래되어 붙여진 이름이며, ‘졸참나무’는 잎이 작을 뿐만 아니라 열매인 도토리도 크기가 가장 작아 ‘졸(卒)’을 붙여 부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굴참나무’는 줄기가 코르크 재료로 이용이 되는 두꺼운 껍질로 싸여있는데, 두터운 줄기에 세로로 골이 깊게 파여 있어 ‘골참나무’로 부르다가 ‘굴참나무’로 불리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나무란 말이 붙여지지 않은 3형제들 중 ‘신갈나무’의 이름은 짚신을 신던 시절 짚신을 갈아 신을 때 이 나무의 잎을 깔고 신었다고 해서 붙여졌으며, ‘떡갈나무’는 떡을 찔 때 이 나무 잎을 바닥에 깔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상수리나무’에는 더 진지한 사연이 담겨 있다. 상수리나무의 원래 이름은 ‘토리’였는데,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며 제대로 먹을 음식이 없어 토리나무의 열매 토리로 만든 묵을 먹었다고 한다. 묵을 맛있게 먹고 배고픔을 견뎌낸 선조는 왜란이 끝나고 왕궁으로 돌아온 후에도 토리로 만든 묵을 즐겨 찾아 토리묵이 상시(常時) 수라상에 오르게 되어 ‘상수라’로 불렸다가 ‘상수리’로 바뀌어 상수리나무로 자리매김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참나무 열매인 ​도토리 6형제들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참나무에 ‘각두(殼斗)’라고도 부르는 깍정이로 머리 부분이 덮여 달려있는 도토리는 털모자를 쓴 모양과 뚜껑 모자를 쓴 모양으로 구분이 된다. 6형제 중 굴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3형제는 털모자를 쓴 모양이다. 뚜껑모자 모양의 각두로 덮인 다른 3형제인 갈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중 신갈나무의 뚜껑모자 모양은 울퉁불퉁하며, 졸참나무의 도토리는 뚜껑모자가 작고 열매는 가늘고 길쭉한 모양을 지니고 있다.

도토리에 연관된 속담으로 별 차이 없는 재주를 가지고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다투는 것을 비유하는 ‘도토리 키 재기’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개밥에 도토리’라는 속담도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개가 밥에 있는 도토리를 먹지 않고 남기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오늘도 코로나19 ‘집콕’에서 벗어나 가을 기운이 흠씬 몸에 와 닿는 숲길을 걸으면서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와 길가의 참나무 잎새 모양을 살펴보며 ‘참나무 6형제’에 담겨진 이야기들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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