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인천에 내린 집중호우로 중구 운북동 동강천이 범람하면서 인근 주택과 빌라 입구가 흙탕물로 가득 차 있다. (사진: 독자 제공) ⓒ천지일보 2021.8.30
지난 21일 인천에 내린 집중호우로 중구 운북동 동강천이 범람하면서 인근 주택과 빌라 입구가 흙탕물로 가득 차 있다. (사진: 독자 제공) ⓒ천지일보 2021.8.30

“주민 민원 무시, 유수 막아”

범람, 재해 아닌 인재(人災)

중구청 “최대 200만원 지원”

주민 “농지성토로 침수악화”

허가해준 행정에 비판 일어

[천지일보 인천=김미정 기자] “집도 잃고 차도 잃고 이제 무엇을 잃을까요. 힘들게 마련한 혼수품이었는데 어느 것 하나 건질 것이 없습니다. 자연재해라고요? 이건 명백한 인재입니다.”

신혼부부라고 밝힌 이들은 26일 인천 중구 운북동 동강천 일대 피해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허탈한 표정으로 이같이 토로했다.

현장에서는 행복한 단꿈에 이것저것 꾸며놨을 신혼집은 온데간데없고 흙과 모래만 덕지덕지 붙어있는 흉한 모습만 보여, 때아닌 범람이 얼마나 심각했을지 그 상황을 짐작게 했다.

굵직한 비만 오면 어김없이 범람해 ‘상습침수지’로 만드는 동강천. 호우 특보와 함께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21일 어김없이 흙탕물이 범람해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다.

26일 순식간에 집안 내부로 흙탕물이 밀어닥쳐 가전 도구 등 가산을 잃었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을 찾은 기자는 무력감에 빠져있는 동강천 인근 주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 신혼살림을 차린 결혼 8개월 차 김재웅(29)씨는 피해 상황을 묻자 “비가 온 지 얼마 안 돼 동강천이 범람했다. 이것은 동강천 인근 도로확장공사와 교량 건설을 하기 위해 동강천에 매설한 미흡한 배수관 설치 등에 따른 엄연한 인재”라며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불만을 쏟아냈다.

김씨는 물에 젖은 소파며 가전제품들을 이미 폐기했다며 텅빈 거실을 가르쳤다. 거실 여기 저기에는 밀려든 흙탕물을 빼내고 쓸고 닦아낸 흔적들로 여기저기 어지럽혀 있었다. 벽지는 물이 찼다가 빠진 흔적으로 시커멓게 오염돼 있었으며 초토화된 주방이며 화장실의 모습은 그날의 처참함을 말해 주고 있었다. 

현관은 두꺼운 합판을 세워 까치발로 딛고 넘어 들어오도록 가림막을 막아놓은 모습이었다. 흙탕물이 또다시 밀려 들어오는 악몽이 재현될까 두려워 임시방편으로 막아놨다는 것이다.

안방으로 들어서자 한쪽에 쭈그려 앉아 물에 젖은 결혼사진을 정리하던 부인 김미나(가명)씨는 “집이며 차며 결혼할 때 준비해 온 모든 것이 다 사라졌다”라며 “(호우 당시) 안방에 있다 거실로 나와 보니 벌써 물이 밀려와 손쓸 방도가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고 울분을 삼켰다.

지난 21일 인천에 내린 집중호우로 중구 운북동 동강천이 범람하면서 피해 주민의 거실이 흙탕물로 가득 차 있다. (사진: 독자 제공) ⓒ천지일보 2021.8.30
지난 21일 인천에 내린 집중호우로 중구 운북동 동강천이 범람하면서 피해 주민의 거실이 흙탕물로 가득 차 있다. (사진: 독자 제공) ⓒ천지일보 2021.8.30

거실 앞 로비에는 당시 침수됐던 냉장고, 세탁기, 옷장 등이 미처 치워가지 못한 채 한쪽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남편 김씨는 보물처럼 간직해왔던 전기기타 등 악기에 묻은 흙탕물을 닦으며 “며칠째 출근도 못 하고 있다. 이 지경이 되기 전에는 거실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좋고 공기도 좋아 직장은 비록 멀었지만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잠을 잘 수도 없는 상황이라 중구청에서 거처할 수 있도록 임시숙소를 마련해줬으나 ‘7일 안에 피해 복구가 안 되면 노인정 등에서 지내야 된다’라는 막막한 말을 들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혼부부가 있던 주택에는 두 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곧이어 만난 집주인 황광남(74)씨는 “새로 수리한 보일러실까지 흙탕물이 고여 못쓰게 됐다”며 기자를 집으로 안내했다.

황씨는 ‘자체복구’ 중인 작은 방을 보여주며 “이 방은 딸과 사위의 살림인데 잠시 맡겨두고 해외 나간 사이 날벼락을 맞았다”고 말했다. 방에서는 젖은 책과 옷가지가 펼쳐져 있고 물기를 말리기 위해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선풍기 1대는 쉴 새 없이 팬을 돌리고 있었다.

안내한 거실과 안방도 처참한 모습이 이어졌다.

황씨는 “물이 침대 언저리까지 차올랐고 신발이 안방까지 둥둥 떠다녔다. 옷장도 물을 먹어 모두 버려야 하는 데 엄두가 안 난다. 그야말로 처참한 심정”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또 “동강천 교량건설 관계자들과 중구청 담당자들에게 몇 번을 얘기했다. 비가 올 때면 해마다 물이 넘치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건 인재”라며 좀 전의 신혼부부와 같은말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피해는 폭 6m, 깊이 2m인 동강천의 교량(다리)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1m짜리 배수관 2개를 묻고 남은 공간을 흙으로 메운 채 공사를 진행했다”며 “장마철이라 많은 비가 올 경우 배수관 2개로는 감당이 안 되니 제거해달라고 몇 번을 강조했지만 ‘현장에 비상 대기해서 지장없이 하겠다’고 밀어붙였다. 막상 물난리가 나니 다음날 배수관을 제거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천 중구 운북동 동강천 교량 공사를 위해 임시 가도를 설치하면서 하천을 막고 배수관 2개가 놓여 있는 모습(위)과 동강천 범람 후 배수관을 걷어낸 모습(아래) (사진: 독자 제공) ⓒ천지일보 2021.8.30
인천 중구 운북동 동강천 교량 공사를 위해 임시 가도를 설치하면서 하천을 막고 배수관 2개가 놓여 있는 모습(위)과 동강천 범람 후 배수관을 걷어낸 모습(아래) (사진: 독자 제공) ⓒ천지일보 2021.8.30

동강천 인근 빌라에 산다는 한 주민(64, 여)은 “해마다 장마철이면 하천물이 넘칠까봐 잠을 깊이 못 잔다. 집을 비워두고 친척집으로 피신한 적도 있다”며 “언제까지 비가 오면 불안하게 살아야 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이날 이들 말고도 동강천 인근에서 토사에 묻히고 물살에 뿌리를 내놓은 밭 농작물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한 주민은 “해마다 개천물이 넘쳤지만 올해는 너무 심하다”며 “근본적인 개선에 힘을 써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중구청 담당자는 “교량 공사를 위해 임시 가도를 설치하면서 통수 능력을 확보했으나 예보와 다르게 비가 많이 내려 도로부터 하천까지 잠기게 됐다”고 해명했다.

중구청 안전관리팀장은 “침수로 인한 피해가구에 대해서는 격려금 차원으로 시비로 지원하고 있다”며 “피해액에 따라 기준이 정해져 있어 현장확인 후 최대 200만원 한도 내에서 지급된다”고 답변했다.

반면 10여년 동안 상습침수되는 곳임에도 그간 반복되는 문제를 개선하지 못한 행정에 대해 주민의 비판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날 주민들은 “무분별한 농지성토와 불법 흙쌓기가 동강천 인근에 이뤄지는 바람에 배수로가 막혀 침수피해가 더 커졌다”며 성토를 허가해준 행정과 만연한 불법행위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일대 건축개발 행위가 이뤄지면서 예견됐던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집중된 농지성토로 현재는 주택이 있는 침수지역보다 지대가 높게 형성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주민들이 지속 피해를 보는 상황에다가 올해는 실제로 거주할 집을 잃어 임시숙소에서 지내는 주민들도 발생한 만큼 주민안전에 대한 시급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천지일보 인천=김미정 기자] 지난 21일 내린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동강천 인근 마을의 물이 빠져 나간 26일 피해를 입은 주택 앞에 쓰지 못하게 된 세탁기, 이불 등 가재도구들이 길거리에 쌓여있다. ⓒ천지일보 2021.8.30
[천지일보 인천=김미정 기자] 지난 21일 내린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동강천 인근 마을의 물이 빠져 나간 26일 피해를 입은 주택 앞에 쓰지 못하게 된 세탁기, 이불 등 가재도구들이 길거리에 쌓여있다. ⓒ천지일보 202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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