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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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의 둔괘(屯卦)는 감(坎), 건(蹇), 곤(困)괘와 함께 사대난괘(四大難卦)이다. 상부에는 물, 하부에는 우레가 있어서 강력한 움직임을 물이 압박하는 고난과 번뇌를 상징한다. 괘사에서 말한 고통은 3가지로, 주거환경, 불임, 사냥이다. 둔괘라고 모든 상황이 어렵지는 않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창시(創始)’ ‘형통(亨通)’ ‘상서(瑞祥)’ ‘견정(堅貞)’이라는 덕행도 이루어진다. 고난과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새싹이 껍질을 깨고 나오거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아이가 어머니의 좁은 산도(産道)를 통해 탄생하는 것과 같은 고통이다. 고통을 감수하고 세상에 나왔다고 순조롭게 성장할 수는 없다. 새싹이나 병아리나 어린아이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극복해야 할 난관이다.

고대인에게 주거는 담장을 쌓아 안전이 보장된 곳이었다. 사냥, 결혼 등도 주거환경과 밀접하다. 둔괘에서는 결혼방식으로 약탈혼 또는 정략혼을 설명한다. 결혼의 원초적 원형으로 남자의 구애가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여성에게는 불임이 가장 난감했다. 사냥은 수렵경제시기에 먹을 것을 구한다는 의미이다. 아무 것도 보장된 것이 없는 상태에서 안전을 얻기 위해 목축과 농업을 창조했다. 둔괘의 고난은 출생, 성장, 노화, 사망까지의 과정이거나, 대업의 성취를 위해 세력을 확대하는 영웅의 모습이다. 이는 멀고 먼 삶의 여정을 가야할 새로운 생명체의 고난에 대한 설명이다. 오랜 내전을 극복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한 도꾸가와 이에야스는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나그네’라고 했다. 어린 시절 인질로 잡혀가 온갖 설움을 겪었던 그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견디며 세력을 길렀다. 한고조 유방(劉邦)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항우(項羽)와 싸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일전에서 승리해 천하의 주인이 됐다.

현대문명이 발달한 사회일수록 출생률이 급격히 떨어진다. 환경적 요인, 정신적, 신체적 장애로 인한 자연적 원인도 문제지만, 결혼연령이 높아지고 아이를 원하지 않는 부부가 많아지는 것이 더욱 심각하다. 자식을 생산하는 것은 생명체의 본능이자 존재의 이유이다. 생존확률이 떨어지는 생명체일수록 많은 씨앗을 퍼뜨린다. 흙 한 줌 없는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에는 엄청난 솔방울이 열리지만, 옥토에 사는 소나무에는 겨우 몇 개 정도의 솔방울만 볼 수 있다. 가난한 집에 아이가 많은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제왕은 수많은 여자들을 거느렸지만 항상 후사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해 정치적 우환이 발생했다. 건국초기의 제왕들은 많은 자식들을 낳았지만, 후대로 갈수록 아들 하나도 얻지 못해 직계가 아닌 방계에서 후계자를 골랐던 사례가 많았다. 군주가 아들을 얻지 못한 것은 지나친 풍족 때문이다.

후손을 생산하는 문제에 대해 가장 치밀하면서도 집요한 사상을 정립했던 유가에서는 ‘효(孝)’에 대한 관념을 통해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의무로 규정했다. 효라는 글자를 파자(破字)하면 대지를 의미하는 ‘土’와 씨앗을 뿌리는 형상으로 추정되는 ‘丿’과 씨앗을 의미하는 ‘子’가 결합된 모습이다. 따라서 최선의 효도는 자식을 낳아 조상의 생명을 이어주는 것이다. 후손이 이어진다면 자신의 생명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대의 형벌 가운데 가장 악랄한 것이 후손절멸이었다. 고대인들은 한 왕조를 멸망시키고 난 후에도 전왕조의 후손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며 적당히 살아가도록 배려했다. 이처럼 전왕조의 생명을 이어준 새로운 왕조의 통치자는 최고의 덕행을 베풀었다는 칭송을 받았다. 고대 중국의 주나라 무왕은 은(殷)왕조를 멸망시켰지만 송(宋)에 봉지를 마련해주고 생명을 잇도록 은전을 베풀었다. 공자의 조상도 송나라 출신이었다. 그것이 공자가 주나라의 제도를 고수하려고 노력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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