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육신묘사당 전경. 7개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향을 피우고 제를 올릴 수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4개 묘서 3개 허묘(墟墓) 추가해
민절사원 터 ‘육각 사육신비’ 세워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 일대 사육신 공원에는 조선의 대표적 충신들이 잠들어 있는 사육신묘가 있다. 사육신 묘지는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바친 사육신(死六臣)을 모신 곳이다.

노량진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와 학원들이 밀집한 곳을 한참 지나면 ‘사육신 공원’ 입구가 보인다.

사육신 공원에는 사육신묘와 위패를 모셔 놓은 곳, 충혼비 등이 있다. 이곳은 주민들을 위해 개방돼 있다. 운동 겸 산책하러 온 주민들은 위패를 모신 곳 앞에 마련된 장소에서 향을 피워 제를 올리기도 하는데, 향을 피운 후 방명록은 필수다.

사육신은 조선 전기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 여섯 명의 충신들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김문기 권자신 성승 윤영손 등도 사건에 연루돼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본래 이 묘역에는 박팽년과 성삼문, 유응부, 이개의 묘만 있었으나 이후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의 허묘(墟墓)도 함께 추봉됐다.

사육신의 죽음은 처참했다. 박팽년은 옥사했으며, 나머지는 군기감(軍器監) 앞에서 능지처사(陵遲處死)를 당했다.

이들은 1455년(단종 3년)에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조카의 왕위를 빼앗고 몰아내자 이에 분개하며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돼 참혹한 최후를 맞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 이들이 단종 복위 운동의 주모자라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그들의 국문 기록인 공초(供招) 내용들과 세조가 팔도에 내린 유시에서 성삼문을 비롯한 17인이 몰래 반역을 도모했다고 기록돼 있을 뿐이다.

단종 복위 운동의 주모자가 여섯 사람으로 확실하게 나타난 것은 훗날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남효온(南孝溫)의 <추강집(秋江集)> 중 ‘사육신전(死六臣傳)’을 통해서다.

▲ 왼쪽부터 신도비, 민절서원 터에 세워진 육각 사육신비, 사육신 중 성삼문의 묘 ⓒ천지일보(뉴스천지)

민절서원은 사육신의 충성심과 의기를 추모하고자 1681년(숙종 7년)에 세워졌다. 서원은 원래 한강가(현재 노들강변) 언덕자락에 있었으나 1691년 지금의 사육신묘가 있는 곳으로 옮겨졌다. 이후 1871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건재했으나 허물어지고 없어진 후 지금은 육각비 옆에 주춧돌만 남아 그 흔적을 전한다.

사육신 공원에서 ‘불이문(不二門)’이라는 현판이 내걸린 내삼문으로 들어가면 1782년(정조 6년)에 세워진 ‘신도비’와 1955년 5월에 세워진 ‘육각 사육신비’가 있다.

한편 서울시는 1978년에 사육신 충혼들을 위로하고 불굴의 충(忠) 정신을 널리 전하고자 1만 710.74m²이었던 묘역을 3만 975.21m²으로 확장, 의절사ㆍ불이문ㆍ홍살문ㆍ비각 등을 새로 지어 공원을 넓혔다. 사육신묘는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8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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