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14일 미국 뉴욕주 앨버니 카운티 법원 앞에서 학부모들이 종교적 사유로 어린이의 백신접종 면제 조항을 폐지한 뉴욕주에 항의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작년 8월 14일 미국 뉴욕주 앨버니 카운티 법원 앞에서 학부모들이 종교적 사유로 어린이의 백신접종 면제 조항을 폐지한 뉴욕주에 항의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보건 위협에 ‘백신 거부’ 규정

미국인 35% “백신 맞기 싫다”

너무 빠른 개발·음모론 등 이유

[천지일보=이솜 기자] ‘백신을 개발하는 것과 백신을 접종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이 막바지에 달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나오는 가운데 19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기사 제목이다.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돌입했지만 너무 빠른 개발 기간, 음모론 등 여러 이유로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왜 백신을 꺼리나

란셋에 따르면 반(反)백신 정서는 세계 국가 90%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일부 백신 거부자들은 코로나19 유행의 결과로 생각이 바뀐 반면 일부에서는 반백신 입장이 오히려 굳어졌다.

이달 발표된 갤럽 조사에서는 코로나19 백신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무료로 제공되더라도 접종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인의 응답이 35% 이상을 차지했다. 미국인 상당수가 공짜 백신조차 꺼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캐나다 앵거스 리드 연구소 조사에서도 대상자의 32%가 코로나19 백신 맞기를 주저하며 백신 접종이 시작돼도 기다릴 것이라고 했으며, 14%는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답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에서 실시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만이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작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사태 전에도 백신 접종을 꺼리거나 거부하는 것을 ‘세계 보건에 대한 10대 위협’ 중 하나로 꼽았다.

예를 들어 ‘홍역 완전 퇴치’ 국가로 분류됐던 미국에서는 작년 홍역 환자가 25년 만에 가장 많이 발생했는데, 이는 홍역 백신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일부 유대교 집단 사이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뉴욕의 초정통파(ultra-Orthodox) 유대교가 백신에 ‘돼지 유래 단백질’이 포함돼 있다는 루머를 믿고 이를 거부한 것이다. 이들은 돼지고기를 부정한 것으로 취급해 먹지 않는다. 작년 6월 홍역 환자 폭증으로 뉴욕주에서 종교적 사유로 어린이의 백신접종 면제 조항을 폐지하자, 학부모 수백명이 주의사당 앞에 모여 “백신 접종 강요는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한 반백신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이는 대부분 음모론에 근거한다.

백신에 원숭이 두뇌가 들어가 있다거나 세계 정보국들의 음모라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특히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과 코로나19 백신을 엮는 음모론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인류에게 추적할 수 있는 마이크로칩을 이식하려는 계획의 위장으로, 그 배후에 게이츠가 있다는 주장이다. 유거브가 지난 5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28%가 이런 음모론을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앞서 대선 기간 “아기가 백신을 맞은 뒤 자폐증에 걸렸다” 등 트위터에서 수십번이나 백신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백신이 개발 속도가 이전 것들에 비해 너무 빨라 믿을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중국 상하이에 사는 줄리아 웨이는 SCMP에 자신은 백신에 반대하지 않고, 6살인 딸에게도 무료 백신을 접종시켜왔지만 이번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밝혔다. 웨이는 “백신 개발은 보통 몇 년이 걸리지만, 코로나19의 경우 몇 달밖에 안 걸렸다”며 “이것은 너무 빠르다. 나는 기니피그가 되고 싶지 않다. 그 백신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 강제 접종 가능할까

백신 접종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스콧 모리슨 호주 연방 총리는 이날 코로나19 백신이 나오면 접종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가 안티 백신 단체 등의 비난 여론에 입장을 선회했다.

모리슨 총리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구의 95%가 백신을 맞게 하는 것이 목표”라며 “건강상의 이유를 제외하고는 모두 접종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 정부는 전날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면 국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그의 발언이 호주와 전 세계에 있는 안티 백신 단체들에 알려지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그는 “호주에는 의무 백신이 없다”며 “아무도 강제적인 조치로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설명했다.

이날 미국의 대표적인 안티 백신 운동가 래리 쿡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호주 총리의 백신 의무화 발언을 전하며, “놀라는 사람 있나? 아니길 바란다. 이는 결국 플랜-데믹(PLAN-Demic, 계획된 대유행)이다”라고 주장했다.

미국 최고의 감염병 전문가인 앤서니 파우치 박사는 앞서 강제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게 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장담했다. 파우치 박사는 “만약 누군가가 백신을 거부한다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백신 거부자들에 대해 강요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 “검증된 백신 믿어도 돼”

백신 전문가들은 접종을 주저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만 개발 과정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당부한다.

윌버 첸 메릴랜드 의대 교수는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FDA 지침이 명확하고 포괄적”이라며 “FDA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우수한 연구 결과에 따라 허가를 받는다면 코로나19 백신의 안전이나 효과에 대해 큰 우려를 갖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스티븐 에반스 런던 보건대학원 약리역학 교수는 코로나19 백신과 관련 “사람들이 꺼리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영국이나 유럽연합(EU) 규제 당국이 효과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 없이 백신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며 “(개발) 속도는 여러 요인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아직까지는 과정에서 부족함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빠른 개발은 임상시험을 한 지원자들의 숫자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질병을 예방하는 데 효능을 보이고 심각한 위험을 보이지 않는 데는 충분한 수”라고 설명했다.

노팅엄 대학의 분자 바이러스학 교수인 조나단 볼은 집단면역 효과에 필요한 백신 적용 범위는 그 효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첸 교수는 지금껏 코로나19가 통제되고 있는 나라들의 경우, 단기 조치를 달성했기 때문이라며 “국가가 안전하게 재개할 수 있는 유일한 장기적 해결책은 효과적인 백신을 이용한 광범위한 백신 접종”이라고 말했다.

◆각국 정부의 과제

백신 접종은 자기 보호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도 중요하다. 인구의 일정 비율이 백신을 통해 감염병에 면역이 되면 ‘집단면역’을 달성할 수 있으며 이는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거나 면역력이 약한 사람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난주 마이클 카푸토 미 보건복지부 차관보는 “다른 백신보다 코로나19 백신을 꺼려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으며 우려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20일 CNN은 “의무적인 백신 접종에 찬성하는 많은 강력한 주장들이 있지만 코로나19 백신을 다루는데 반드시 그러한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며 “20세기 소아마비는 사람들이 주사를 의무적으로 맞아야 했기 때문이 아닌 그 질병의 공포를 널리 이해했기 때문에 통제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잠재적인 코로나19 백신 반대 운동을 벌이는 반대자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의무 접종’ 또한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CNN은 “만약 백신 접종률이 너무 낮아서 집단면역이 생기지 않는다면, 정부는 백신 미접종자에 대해 공립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하거나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백신을 맞도록 의무화하며 백신 접종을 강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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