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진보적 시민단체와 도덕성
[정치평론] 진보적 시민단체와 도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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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제1441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27일 열렸다. 말이 1441번째이지 여기까지의 과정은 눈물과 원망, 분노와 절규의 연속이었다. 그 지난했던 과정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들의 투쟁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정대협과 정의연은 그 상징이었다. 그들의 투쟁은 곧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투쟁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 여학생들이 참여하고 현장에서 모금이 이뤄지기도 하고 더 나아가 국민들의 성원이 잇따른 것도 모두 이런 배경이었다.

그러나 지난 27일의 시위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바로 위안부 피해 생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또 다른 눈물’ 때문이었다. 이날 집회는 이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 이후 열렸다. 이 할머니는 2차 기자회견에서 지난 30년 동안 정의연(정대협)에 끌려 다니며 이용당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따라서 이날 집회는 당연히 일제의 만행보다 이 할머니의 눈물에 대해 과연 정의연이 어떻게 답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다.

이날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지난 한 주는 고통과 좌절, 절망과 슬픔의 시간이었다”는 말로 경과보고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과 관련해 “마음이 아프고 진심으로 송구하게 생각한다. 그 깊은 고통과 울분, 서운함의 뿌리를 우리 모두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나영 이사장이 때론 울먹이면서 소회를 밝혔지만, 국회의원 당선인 신분으로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윤미향은 참석하지 않았다. 연락을 끊은 채 변호인을 선임해서 법정 싸움에 나선다는 소식만 들린다.

한국 민주주의는 1980년대 후반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다양한 부문의 시민운동을 핵심 동력으로 발전했다.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지평이 확대된 것은 정권의 탄압과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정의와 인권, 민주와 평화의 가치를 수호코자 했던 시민, 사회, 노동운동가들 및 그 단체의 활발한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이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깃발에 박수를 보냈던 것은 바로 그들의 활동 바탕에는 ‘강한 도덕성’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고단하고 가난한 시민운동가의 삶이지만, 옳고 정의로운 길을 걸었던 그들이었기에 대부분의 국민이 지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 때문일까. 그동안 시민운동가로서 명망을 얻었던 다수의 인사들이 정관계에 진출해 지금도 크고 작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정권교체 이후에도 민주화가 지체되고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자 권력을 장악한 민주화 세력은 점차 기득권 세력으로 변했다. 일부 민주화 세력의 ‘패권주의’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는 감히 그들을 향한 비판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비대하고 막강한 정치기득권 세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정의는 ‘독선’으로 변질되고, 내편과 네편으로 가르는 ‘진영 논리’가 대세를 장악했다. ‘악마’와 싸우면서 스스로 악마가 된 형국이다. 물론 일부이긴 하겠지만 그들에게 도덕성은 말 그대로 ‘양두구육(羊頭狗肉)’의 행태에 다름 아니었음이 곳곳에서 폭로되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의 하수인들이 아니라 그들과 싸웠던 민주화 세력의 도덕성 추락은 지금 대한민국의 대표적 위기 가운데 하나라 하겠다.

불행하게도 민주화 세력에 바탕을 둔 진보적 시민, 사회, 노동운동 세력의 도덕성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과거 도덕성 우위를 확고하게 유지하면서 국민적 지지를 이끌었던 모습은 정말 옛날 얘기처럼 되고 말았다. 최근의 ‘조국 사태’는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겉으로는 민주와 정의, 양심과 도덕을 말하지만 그들의 일상이 독재정권의 앞잡이들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 국민의 분노였다. 게다가 그런 조국 일가를 엄호하면서 길거리로 나섰던 시민들 역시 정치기득권 세력이 조장하고 있는 ‘진영 싸움’의 희생자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곧 정의’라는 그 무도한 패권주의적 발상이야 말로 기득권화 된 민주화 세력의 ‘괴물 본성’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다른 곳은 몰라도 최소한 정의연은 다를 것으로 봤다. 다른 시민운동과는 고민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제의 만행을 여성의 몸으로 감내해야만 했던 위안부 할머니들, 그 할머니들의 상처와 눈물을 어루만지면서 일제의 만행을 역사와 전 세계에 고발했던 활동가들이었다. 게다가 살아계신 할머니들도 이젠 손꼽을 정도다. 그렇다면 더 절박한 심정으로 살아계신 할머니들을 껴안아야 할 활동가들이었다. 도덕성은 그들의 생명줄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국민을 배신하고 말았다. 국민과 정부가 지원해 준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소리만 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확산되고 있음에도 누구하나 회계장부를 국민 앞에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윤 당선인이 정의연을 사실상 사유화 했다는 주장이 더 뼈아프게 들린다. 사태가 이렇도록 그 많은 활동가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누구보다 정의롭고, 누구보다 도덕적이어야 할 활동가들 아닌가.

물론 정의연 활동과 윤미향 당선인을 구별해서 봐야 한다. 윤 당선인이 큰 처벌을 받더라도 그로 인해 정의연 활동의 성과까지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 당선인이 없더라도 정의연 활동은 더 지속돼야 한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최소한 정의연의 도덕성 문제만 놓고서도 윤 당선인이 자진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도 나왔어야 했다. 그래야 그들의 도덕성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없었다. 윤 당선인도 그 후 입을 닫아버렸다. 조만간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나타나서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겠다는 말을 할 것이다. 참으로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 참담한 현실을 일본의 아베 정권이 어떻게 보고 있을지, 그것 때문에 잠이 오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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