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한국정치를 양분하고 있는 거대 양당이 21대 총선에서 나란히 ‘비례용 꼼수정당’을 만들어 비례의석 대부분을 쓸어갔다. 비록 초라하게 시작된 ‘연동형 비례제’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낯선 제도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여러 군소정당들은 허망하게도 그들의 작은 기대마저 접어야 했다. 불과 몇 석이라도 얻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거대 양당의 탐욕과 꼼수는 끝이 없었다. 부끄러움도 없었다.

사실 연동형 비례제는 거대 양당을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세력의 정치독점을 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원내에서 다양한 정당들 간의 정책경쟁을 촉발시켜 정당정치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대화와 협력이라는 민주정치의 대의를 복원시키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끝내 거대 양당의 짓밟기와 비틀기로 인해 비례용 꼼수정당이 창당되더니 결국 비례의석까지 그들만의 잔치판이 되고 만 것이다. 거대 양당을 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 기득권세력의 정치독점만 더 강화되고 말았다. 아프다 못해 참담하다.

최근 총선이 끝나고 21대 국회 개회를 앞둔 시점에서 두 비례정당에 대한 마무리를 놓고 저급한 꼼수 얘기가 다시 나왔다. 각 17석과 19석을 나눠가진 거대 양당이 당초 국민에게 약속했던 모(母)정당과의 통합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1~3석만 영입해서 20석만 채우면 교섭단체가 되고, 그러면 거액의 정치자금과 국회에서의 크고 작은 자리도 대폭 늘어날 것이니 굳이 모정당과의 통합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계산이다. 이런 발상은 국민과의 약속이나 국민의 심판마저 안중에도 없는 저급한 구태에 다름 아니다.

비록 꼼수로 비례정당을 만들긴 했지만 모정당과의 ‘통합’을 약속하고 21대 총선에서 국민의 표를 얻은 것이다. 그런데 예상보다 의석을 많이 얻자 또 ‘꼼수의 셈법’이 작동되는 것인가. 독자적으로 교섭단체를 만들겠다는 것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국민이 만들어준 선거결과마저 짓밟는 배신행위에 가깝다. 두 비례정당을 지지한 것이 21대 국회에서 그들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라고 표를 줬다고 보는 것일까. 모르면 입을 닫아야 한다. 알고도 독자적인 교섭단체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저질’에 가깝다. 선거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배신의 셈법을 따지고 있는지 말문이 막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민주당이 국민과의 약속대로 더불어시민당과의 통합에 나섰다는 점이다. 오는 15일 전당원 투표에서 통합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통합으로 결정 나겠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굳이 또 전당원 투표가 필요 하느냐는 점이다. 총선 전 비례정당을 만들 때 이미 두 당의 통합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통합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면 과연 더불어시민당에 압도적인 지지가 쏠릴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당초 약속을 그대로 지키면 될 일이다. 굳이 전당원 투표라는 절차를 밟으면서 ‘간보기’를 하는 듯한 모양새는 집권당 언행 치고는 당당하지 못하다.

문제는 통합당이다. 통합당은 무소속이든 통합당 소속이든 한 명만 미래한국당으로 보내서 독자적인 교섭단체를 만들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당해체 수준의 심판을 받고 나서도 여전히 구태와 저질의 언행이 그치질 않고 있다. 무려 19석을 만들어준 통합당 지지층을 무시하겠다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통합당 지지층이 이번에도 ‘꼼수 교섭단체’를 지지해 줄 것으로 믿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통합당 지지층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국민은 앞으로 상대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통합당의 이런 발상에 대해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가 통합당 지도체제가 정비되면 통합을 ‘협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협의이지 통합하겠다는 적극적인 뜻은 아니다. 심지어 미래한국당 조수진 수석대변인은 ‘선 선거법 개정, 후 합당’을 공식화 했다.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의 통합 문제에 이제는 ‘조건’이 붙은 셈이다. 연동형 비례제가 폐기되지 않으면 통합이 어렵다는 뜻이다. 통합당과 미래한국당 두 정당의 통합 문제에 왜 선거제도가 끼어든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당초 약속대로 통합을 하면 된다. 그것이 싫으면 한 석을 더 추가해서 ‘꼼수 교섭단체’를 만들면 된다. 그런데 거기에 슬그머니 선거법을 조건부로 끼워 넣는 것은 낯익은 구태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선거법 개정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비례의석을 몇 석을 할지, 연동형 비율을 100%로 할 것인지 등의 논의는 금세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러면 그 때까지 미래한국당은 독자적으로 가겠다는 뜻이다. 국민과의 약속을 짓밟는 참으로 고약한 발상이다.

이 뿐이 아니다. 아예 미래한국당 독자 운영을 전제로 국민의당과 공동으로 교섭단체를 꾸려야 한다는 저급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발상까지 거론되는지 참으로 목불인견이다. 국민의당이 그들을 망쳐버린 통합당의 꼼수정당과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천박한 발상이야말로 잇속에 밝은 정상배들의 전형적인 술책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전형적인 ‘꾼들의 셈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통합당은 더 이상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국민의 엄중한 질책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당장 미래한국당과의 통합을 서둘러야 한다. 자칫 시간을 끌거나 저급한 술책으로 ‘꼼수 교섭단체’를 만든다면 정말 답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도 당연히 ‘맞불’을 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럴 경우 그 후의 정치파행에 대한 모든 책임을 통합당이 질 수 있겠는가. 통합당은 더 이상 비례정당을 욕보이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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