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詩] 언덕 - 노천명
[마음이 머무는 詩] 언덕 - 노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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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노천명(1912 ~ 1957)

창으로 하늘이 들어온다.
눈만 뜨면 내다보는 언덕
소나무가 서너 개 아무것도 없다.
오늘도 소나무가 서너 개 아무것도 안 뵌다.
 
방 안 풍경이 보기 싫어
온 종일 언덕을 바라본다.
사람이 지나가면 눈이 다 밝아진다.

 
전봇대모양 우뚝 선 사람이 둘
혹시 나 아는 이 아닐까
 
가슴이 답답하면 언덕을 본다.
눈물이 나면 언덕을 본다.
이방인 같아 쓸쓸하면 언덕을 본다.
언니랑 조카가 보고프면 언덕을 본다.

 

[시평]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라고 사슴을 노래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 노천명.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 당시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해서, 당시 서울을 점령하고 있던 북한 인사들에 의하여 결성된 문학가동맹에 가담을 했던 전력으로 인하여, 부역의 혐의를 받고 일시 투옥되어 고통을 겪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감옥에서의 암울함과 출옥 이후에도 겪었던 착잡한 심정을 노래한 시들을 묶어, 노천명은 제3시집 ‘별을 쳐다보며’를 출간했다. 이 시집에는 노천명 시인의 참담했고 또 착잡했던 심경들이 그대로 토로된 시들이 많이 실려 있다. 감방에 수감이 되어, 망연히 바라보던 시각으로 노래한 작품 ‘언덕’, 역시 이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감방의 창으로는 푸른 하늘이 들어와 있고, 자고 일어나 눈만 뜨면 내다보이는 창밖의 풍경. 다만 소나무 서너 그루만 쓸쓸히 서 있는 작은 언덕이 전부인 그 풍경. 매일 바라다보는 같은 풍경이지만, 오직 바라다 볼 수 있는 풍경은 이 언덕뿐이 없었던 시인 노천명. 가슴이 답답해도, 눈물이 나도, 이방인 같이 쓸쓸해도 바라보던 언덕. 어쩌면 우리 모두 이러한 언덕 하나에 의지하여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의 감방, 스스로 갇혀서.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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