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지난 30년 동안 상가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올라도 너무 올랐다. 높은 임대료에 코로나까지 겹치게 되니까 자영업자들이 더욱 못 견디는 것이다. 임대료가 치솟는 사이 임대인의 사회적 윤리는 실종됐다.

파리 날리던 가게가 장사가 잘되게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임대료 폭탄을 안기거나 기한 다 찼다고 나가라고 압박하는 임대인들이 많았다. 억울하다고 버티면 법의 힘을 빌려 용역깡패까지 동원해 내쫓기를 일삼던 임대인들이다.

코로나19로 문을 닫거나 평소의 10%의 매출밖에 못 올리고 직원을 내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가 닳고 있는 이 시기에도 임대인들 대다수는 임대료를 꼬박꼬박 받아 챙기고 있다. “장사하기 싫으면 나가면 된다”는 태도를 가진 임대인들이 아직도 많다. 이런 임대인을 상대로 “월세를 좀 깎아주면 안될까요?”라고 묻기는 쉽지 않다. 말 잘못 꺼냈다간 재계약 때 내쫓김을 당하기 십상이다. ‘착한 임대인 운동’에 호응하는 임대인이 나타나고 있지만 전체 임대인 수로 보면 너무나 적은 수다.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비상한 사고와 비상한 방법이 동원돼야 한다. 지금은 임차인 생존의 비상시국이다. 갑의 위치에 있는 임대인이 비상한 사고를 해야 해결될 수 있다. 동시에 국가가 비상한 사고를 해야 해결 가능하다. 임차인이 생존의 벼랑에 몰려 있는 지금 국가와 임대인이 비상한 방법을 동원하지 않으면 비상한 상황은 해결되지 않는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망 전체, 곧 임대차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임차인뿐만 아니라 임대인의 존재 기반도 파괴된다.

임대인은 임차인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임차인은 임대인의 존재 근거이다. 그럼에도 임대인들은 돈의 힘과 자신의 재산권을 보호해주는 국가의 힘만 믿고 임차인을 상대로 권력을 마음껏 휘둘러왔다.

아프리카 여러 부족 사회는 “당신이 있으므로 해서 내가 존재한다”는 소중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우분투’ 정신이다. 임차인이 있으므로 임대인이 있다. 임대인들은 자신이 소유한 건물에 입주해 있는 세입자들이 있어 자신이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네가 없어야 내가 산다” “너가 아니어도 내 건물에 들어올 사람 줄 섰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임대인이 절대다수라면 우리사회는 희망이 없다.

물론 훌륭한 임대인도 많다. 10년 심지어 17년 동안 임대료를 안 올린 사람도 있고 한 곳에서 계속 장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임대인도 있다. 2년 전에 숙대 앞에 있는 칼국수집에 우연히 들른 적이 있다. 주인장과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다가 임대인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 건물 임대인은 중년의 남자라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아들을 동반하고 와서 계약서를 다시 작성했다고 한다. 아들에게 “임차인이 장사하고 싶을 때까지 장사하게 하고 임대료도 적정하게만 올리라”고 다짐을 받고 나서 아들 명의로 계약서를 작성하게 했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이런 사람은 소리 소문 없이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이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상을 많이 주고 있는데 바로 이런 사람을 찾아내어 상을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임대인들이 마음을 모아 올해 10개월 동안은 임대료를 50%만 받겠다고 스스로 선언하는 건 어떤가? 10개월이 너무 길면 6개월이라도 이렇게 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결정을 하려면 임대인연합회 같은 전국 조직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임차인연합회 같은 전국조직도 있어야 할 것이다. 서로 만나 상생협약을 하고 정부에게 일정한 지원을 함께 요청하고 정부는 적극 호응하는 형태를 띤다면 좋을 것이다.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정부가 기존 상가를 사들이거나 신축해서 자영업자에게 공급하자는 것이다. 공공상가를 전체 상가의 20~40% 확보하고 이윤 추구하지 않고 운영한다면 민간 소유 가게의 임대료를 낮추는 효과도 있고 자영업자의 삶도 보다 윤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상가가 많다면 코로나19 같은 사태에도 훨씬 잘 대응할 수 있다. 부자들에 의한 땅과 공간의 독점은 옳지 않다. 공공상가를 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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