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올해는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이다. 지금 서울 세종로 동아일보 앞에 가 보면 ‘동아일보 폐간하라’고 요구하는 게시물이 펼쳐져 있고 동아일보가 지난 100년 동안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조목조목 짚고 있다.

일제 때 ‘천황’이라 불린 일본제국의 왕에게 충성 맹세한 내용과 조선의 젊은이들을 징병으로 내모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박정희 정권의 언론 탄압에 저항한 기자를 한꺼번에 130여명이나 해직시킨 내용이 담겨 있고 이른바 ‘신탁통치 오보사건’도 실려 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할 동아일보의 오점이 바로 ‘신탁통치 오보 사건’이다.

동아일보는 1945년 12월 27일 모스크바 삼상회의 논의 내용을 전하면서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에 내보냈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에 가까웠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다는 루즈벨트는 연합국 수뇌가 참석한 얄타회담 등에서 ‘한국인은 자치능력이 없기 때문에’ 최장 30년 동안 신탁통치를 해야 한다는 망언을 한 바 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때 미국은 신탁통치가 본격 실시될 때까지 미국, 영국, 중국, 소련으로 구성되는 단일정부가 통치하도록 하자고 하면서 조선인은 단지 고문관, 행정관, 조언자의 역할만 부여하자고 주장했다. 조선민족 단일 정부 수립안은 아예 없었다.

미국은 “5년 신탁통치를 실시하고 10년으로 연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을 내어 놓았고 소련은 “신탁기간중 조선정부가 주권을 행사하게 하고 4개국은 조선의 독립과 민주적 발전을 위해 원조를 하는 후견적 위치에 머물도록 하고 신탁통치기간은 5년 이내로 한정하자”고 제안했다. 동시에 후견적 역할도 임시민주정부와 미소공동위원회의 협의를 통해 결정하자고 말했다. 미국 입장과 극명하게 대립된다. 이것이 진실이다.

동아일보가 보도한 내용을 ‘오보’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오보’가 아니다.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왜곡보도다. 미국 내 제국주의 패권 세력이 의도적으로 흘린 내용을 국내 합동통신이 받아서 언론에 뿌렸다. 역사학자 김상구 선생에 따르면 합동통신은 사실상 미군정이 설립한 통신사라고 한다. 조선일보, 자유신문, 신조선보 등 주요 우익 언론도 “소련은 신탁통치를 강조하였고 미국은 즉각적인 독립을 옹호하였다”는 내용의 가짜 뉴스를 1면에 크게 보도했다.

미국 내 반 소련 반공 세력의 공작적 행태에 부화뇌동한 국내 신문의 행태가 잘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도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언론매체가 수두룩한데 해방 직후 자주 써먹던 버릇을 못 버린 결과라 할 수 있다.

미 패권세력의 공작에 놀아난 매체가 6개나 되는데 왜 ‘동아일보 신탁통치 오보 사건’이라고 불릴까. 다른 매체들은 ‘소련 신탁통치, 미국 즉각 독립’이라는 말을 쓰고 마지막에 물음표를 붙여 의문의 여지를 남겼는데 동아일보는 확정적 사실로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이라고 명확히 표현해 버린 것이다. 다른 신문들이 (?)를 써서 기사를 내보낸 것은 오보로 판명되었을 때를 대비한 면피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물음표조차 없는 동아일보의 기사는 악의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해방 직후 절박한 과제는 민족자주 실현, 통일국가 수립과 함께 친일파 청산이었다. 하지만 동아일보의 신탁통치 허위보도로 인해 친일파는 ‘반탁’을 무기로 애국세력으로 변신할 수 있었고 일제때 가장 비타협적으로 싸웠던 사회주의 항일세력은 ‘찬탁’을 했다는 이유로 매국세력으로 낙인이 찍혔다. 남한 내 정치세력은 극단적으로 대결하게 됐고 그 결과는 통일국가 무산과 분단국가 수립이었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신탁통치’ 허위보도가 우리 민족사에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됐는지 알 수 있다.

동아일보는 신탁통치 관련 잘못된 뉴스를 확정적 사실로 보도함으로써 진실을 거짓으로,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킨 씻지 못할 죄를 지었다. 동아일보는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공식 사과를 하는 것이 역사의 죄과를 조금이라도 씻어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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