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칼럼] 역사 속에 잊혀진 종친부 변천사 재조명(10)
[박관우 칼럼] 역사 속에 잊혀진 종친부 변천사 재조명(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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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1929년 병동이 신축됐고, 1932년 외래진료소(外來診療所) 증축 공사를 실시해 3층짜리 규모의 외래진료소가 완공됐는데 내과를 비롯해 외과, 산부인과,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비뇨기과, 정신과, 치과 등 임상 9개과와 약국이 설치됐다.

이와 관련해 외래진료소 증축공사는 주로 외래진료소를 증축하는 공사였지만 사성문(四星門) 행랑(行廊)과 남서쪽 일대에 변화를 일으켰으며, 전염병실과 창고는 모두 조선식 목조 평가 건물을 개조해 사용했기 때문에 이 무렵까지만 하더라도 종친부(宗親府)의 행랑이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36년에 내과와 외과를 위한 시설이 증축되면서 기존의 종친부 건물은 훼철되거나 변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경의전 부속병원(京醫專附屬病院) 관련 공사는 1937년까지 지속되었으며, 이후는 관련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볼 때 1937년 이후 공사는 소강 국면으로 접어 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1940년대 이후 지도에 경근당(敬近堂) 일대와 팔각형 서고가 나타나고, 1958년 지도에도 보이고 있어 당시에 이 건축물(建築物)들이 잔존(殘存)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경복궁(景福宮) 동문(東門) 건춘문(建春文)의 건너편 지역에 위치하였던 정문을 비롯하여 행랑은 남아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러한 근거는 1960년 수도육군병원(首都陸軍病院)에서 거행된 이기붕(李起鵬) 일가(一家) 운구 차량(運柩車輛) 사진에 정문과 좌우로 연결된 행랑이 촬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문과 행랑이 그 이후 어떤 경위로 없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1970년대 종친부를 스케치한 시설배치도(施設配置圖)에는 중학천변(中學川邊)에 정문과 행랑 대신에 담장을 표시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 이전에 정문과 행랑이 철거되고 담장을 쌓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세워진 경의전 부속병원은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제2부속병원으로 사용됐다.

또한 6.25 전쟁중에는 육군통합병원(陸軍統合病院)으로 사용되었으며, 1971년 이후 국군기무사령부(國軍機務司令部)(이하 기무사) 본관으로 사용되었는데 기무사가 다시 과천으로 이전한 뒤 일부를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사용했다.

이후 2013년 종친부가 국립현대미술관(國立現代美術館) 서울관으로 변모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당시 웅장하고 찬란하였던 종친부 건축물 10여개 중에서 오늘날 경근당과 옥첩당(玉諜堂)이 보존돼 이곳이 종친부가 있었던 자리라는 사실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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