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삼척시에 있는 죽서루. 관동팔경 중 제일루로 꼽히며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으며 유일하게 국가보물 제213호로 지정됐다. ⓒ천지일보 2020.1.17
강원 삼척시에 있는 죽서루. 관동팔경 중 제일루로 꼽히며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으며 유일하게 국가보물 제213호로 지정됐다. ⓒ천지일보 2020.1.17

관동팔경 중 으뜸 ‘제일루’ 꼽혀
유일하게 석양 감상, 국가 보물
보는 각도에 다른 풍경 감상 매력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강원 동해안 명승지의 상징인 ‘관동팔경’. 이들 팔경은 정자나 누대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풍류를 즐기고 빼어난 경치를 노래로 읊었다. 조선 선조 때 문인이자 시인인 송강 정철(鄭澈)이 ‘관동별곡’에서 관동팔경의 경치를 노래해 사람들한테 익히 알려졌다.

강원 삼척시에 위치한 죽서루(竹西樓)는 관동팔경 중에서 제일 큰 누각이고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다. 나머지 칠경이 동해바다를 끼고 있어 일출을 감상하는 곳이라면 죽서루는 석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에서도 으뜸가는 누각이라 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 했다. 이 때문인지 팔경 중 유일하게 국가 보물(제213호)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며, 송강 정철 시비(詩碑)인 ‘송강 가사의 터’ 표석이 유일하게 있다. 이 표석은 이어령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1991년 장관으로 있을 때 가사문학에 큰 업적을 남긴 정철을 기념하기 위해 2개의 표석을 세웠는데, 다른 하나는 ‘성산별곡’의 무대인 전남 담양의 식영정 부근에 있다.

자연암반과 자연초석을 그대로 이용해 기둥을 세운 죽서루 ⓒ천지일보 2020.1.17
자연암반과 자연초석을 그대로 이용해 기둥을 세운 죽서루 ⓒ천지일보 2020.1.17

◆자연암반·초석 그대로 기둥 세워

이같이 관동팔경 중 특별하고도 구별된 느낌을 주는 삼척의 죽서루는 삼척 시내와 오십천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시가지를 거쳐 죽서루 입구에 도착하면 죽서루 누각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양옆에는 이름처럼 대나무(竹)들이 길쭉하게 솟아있다. 양반나무로 불리는 회화나무도 6~7그루가 있는데 과거 급제하라는 염원으로 마을사람들이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관람료는 무료라 편한 마음으로 가볍게 입장하면 되는데, 입구에 비치된 안내책자를 꼭 챙기고 들어가야 죽서루의 매력을 더 만끽할 수 있다. 누각 내에는 죽서루의 경치를 예찬한 시와 기문의 편액(현판)이 걸려 있는데, 한자로 돼있다. 안내 책자에는 대표적인 시 몇 편이 친절하게 한글로 해석돼 있어 시를 직접 감상하고 읊는다면 더욱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죽서루의 특징은 주춧돌 대신 자연암반과 자연초석을 그대로 이용해 기둥을 세웠다. 따라서 기둥의 높이도 제각각이며 2층 누각이라 반드시 있어야 할 사다리 없이 돌계단이나 혹은 암석을 타고 올라간다. 입구는 좌우로 입장이 가능한데 왼쪽은 양반이, 오른쪽은 평민이 출입하도록 구분됐다. 이 같은 배경을 듣게 되면 다들 왼쪽으로 입장한다고 한다. 양반 이상이 입장할 수 있는 왼쪽은 큰 기암괴석 사이로 돌계단으로 잘 정비된 반면 평민이 입장하는 오른쪽은 무릎 이상을 올려 암석을 타고 걸어 올라가야 한다.

죽서루 왼쪽 출입구 ⓒ천지일보 2020.1.17
죽서루 왼쪽 출입구 ⓒ천지일보 2020.1.17

◆숙종·정조의 흔적, 어제(御製) 현판 감상

죽서루의 마루는 넓은 널을 짧게 잘라 끼워놓은 우물마루며 내부 공간도 넓어 여름철에는 시원해 땀을 식히며 잠깐 누웠다가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신발을 벗고 누각 안으로 들어오면 천장에 각종 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율곡 이이가 쓴 시도 보이며, 조선 19대 왕인 숙종의 시와 22대 왕인 정조의 시도 있다. 숙종의 시는 당시 삼척부사 이상성이 옮겨 썼고, 정조의 시는 김충현이 글씨를 새겨놨다.

이들 두 왕은 관동팔경을 직접 올 수 없어 대신 당대 최고 화가들에게 그림으로 그려오라고 했던 왕들이기도 하다. 숙종의 명을 받은 겸재 정선이 그린 것이 관동명승첩이고, 정조의 명을 받고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이 금강사군첩이다. 금강사군첩에 나온 죽서루에는 절벽 아래 강에 배를 띄운 풍경까지 있다.

죽서루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운치를 느낄 수 있다. 누각 내부는 벽이 없고 탁 트여 있어서 사방으로 잘 보이는데, 누각 뒤로는 오십천의 강풍경과 그 뒤로 두타산과 태백산의 산줄기를, 앞으로는 삼척시내와 함께 멀리 아련하게 보이는 동해바다까지 감상할 수 있다. 또 오십천 건너편에 와서는 강 절벽에 위치한 죽서루의 주변경관도 감상할 수 있다.

오십천 절벽 위에 위치한 모습 ⓒ천지일보 2020.1.17
오십천 절벽 위에 위치한 모습 ⓒ천지일보 2020.1.17
오십천 건너편에서 바라본 죽서루 모습. 깍아지는 듯한 기암절벽과 눈꽃이 어우러진 설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같다. (제공: 삼척시 제공) ⓒ천지일보 2020.1.17
오십천 건너편에서 바라본 죽서루 모습. 깍아지는 듯한 기암절벽과 눈꽃이 어우러진 설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같다. (제공: 삼척시 제공) ⓒ천지일보 2020.1.17

옛날에는 죽서루에서도 멀리 바다까지 보이고, 오십천의 흐르는 물줄기까지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이를 느끼기엔 부족하다. 오십천은 물이 많이 줄었고, 삼척시가지는 아파트가 들어서 동해바다까지 보이는 경관을 방해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의 모습 그대로 보기보단 당시의 모습도 떠올리면서 감상해야 죽서루의 운치를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조선중기 때 삼척부사였던 허목(1595~1682)의 ‘죽서루기’에 보면 왜 죽서루를 제일이라 하는지 그 이유로 당시 경치가 잘 묘사돼 있다. 죽서루기에 따르면 큰 하천이 동쪽으로 굽이쳐 50개의 여울을 이루는데, 죽서루 절벽 아래 맑고 깊은 소의 물이 여울을 이뤄 그 절벽 아래를 감돌아 흐르니 서쪽으로 지는 햇빛에 푸른 물결이 돌에 부딪혀 반짝반짝 빛난다고 표현돼 있다.

죽서루 내부 모습. 각종 시와 기문 편액(현판)이 걸려 있다. ⓒ천지일보 2020.1.17
죽서루 내부 모습. 각종 시와 기문 편액(현판)이 걸려 있다. ⓒ천지일보 2020.1.17

◆소원과 득남 기원 용문바위·성혈터

죽서루는 조선시대 삼척부의 객사였던 진주관의 부속건물이라 접대와 연회를 베풀던 장소로 활용됐다. 또한 삼척지방 양반 사대부와 이곳을 찾는 시인 묵객들의 정신수양을 위한 휴식공간으로도 사용됐다. 죽서루 오른쪽으로는 진주관 자리의 큰 공간이 빈터로 남아 있고 그 옆으로 대나무들이 담장을 이루고 있다. 죽서루 왼쪽으로는 용문바위와 성혈유적이 있다.

용문바위는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 문무왕이 사후 해릉에 묻혀 호국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삼척의 오십천을 뛰어들 때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갔다는 전설이다. 바위가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어 용문으로 불리며, 사람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소원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바위 위로는 일곱 구멍의 성혈이 있는데, 칠월 칠석날 자정에 부녀자들이 이곳을 찾아 구멍에 좁쌀을 담아놓고 치성을 드린 다음 그 좁쌀을 한지에 싸서 치마폭에 감추어 두면 아들을 낳는다는 득남의 기원 장소다.

죽서루 왼쪽에 있는 용문바위. 사람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소원을 빈다. ⓒ천지일보 2020.1.17
죽서루 왼쪽에 있는 용문바위. 사람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소원을 빈다. ⓒ천지일보 2020.1.17

죽서루를 둘러본 후 절벽 위의 죽서루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입구를 나와 오십천 위의 다리를 건너 죽서루 맞은편으로 오면 데크정자가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죽서루가 가장 운치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자 앞에는 망원카메라가 있는데 죽서루는 물론 절벽에 새겨진 글씨들까지 감상할 수 있다. 절벽에는 조선중기 문인 박유(1606~1626)의 시2편과 여러 이름들이 새겨졌다. 독립운동가 남궁억, 근대서예가 김태석, 삼척부사 이규헌, 삼척에 유배 왔다가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1720~1799) 등의 이름을 망원카메라로 감상할 수 있다. 안내판에 설명된 좌표에 따라 망원카메라로 찾아내 감상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죽서루 오십천 건너편에서 망원카메라로 감상할 수 있다. ⓒ천지일보 2020.1.17
죽서루 오십천 건너편에서 망원카메라로 감상할 수 있다. ⓒ천지일보 2020.1.17
죽서루 사계절 모습 (제공: 삼척시청) ⓒ천지일보 2020.1.17
죽서루 사계절 모습 (제공: 삼척시청) ⓒ천지일보 2020.1.17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축물이자 관동팔경의 제일루인 죽서루에서 잠시 송강 정철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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