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장편 2 - 김종삼
[마음이 머무는 시] 장편 2 - 김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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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2

김종삼(1921 ~ 1984)

조선 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 변 10전 균일상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아버지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시평]

조선 총독부가 있을 때이니, 일제 강점기이리라. 지금은 복개가 되었다가 다시 열린, 그래서 인공급수이나마 물이 흐르는 청계천. 청계천은 서울의 북촌과 남촌을 가르는 중요한 경계가 되는 하천이었다. 특히 청계천은 건천(乾川)이기 때문에, 비나 내려야 그 물의 양이 늘어나는 하천이었다. 그래서 청계천 주변은 늘 모래톱이 쌓여, 그 모래톱 주변으로는 이런저런 서울의 어려운 사람들이 어려운 일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려운 사람들이 일과 중에 점심이나 저녁 한 끼를 떼는 청계천 변 10전 균일상 밥집,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영감은 또 밥을 얻으러 온 줄로만 알고 나가라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거지소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태연히 서 있다. 오늘은 장님 아버지 생일이니까, 나도 당당히 십전 내고 밥을 사서 아버지께 생일밥상을 차려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거지소녀는 태연하게 서 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나도 오늘은 다른 날과는 다르게, 제대로 돈을 내고 밥을 사먹는 사람이니까. 뭐 면구하거나 두려울 것 하나도 없다는 모습으로, 10전 짜리 두 개를 주인영감에게 보이고 있다. 마치 짧은 소설, 그 짧기가 손바닥만한 소설, 장편소설(掌篇小說)의 마지막 반전(反轉)을 읽는 듯한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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