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실험.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쥐실험.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실험동물’의 대표주자 흰쥐

지혜롭고 생존적응력 뛰어나

동물실험 대상으로 안성맞춤

매년 300만 마리 흰쥐 동원

[천지일보=최빛나 기자] 2020년 경자년(庚子年)은 흰색을 뜻하는 경(庚)과 동물을 뜻하는 자(子) 즉 ‘흰쥐의 해’이다. 하지만 흰쥐의 해에도 흰쥐들은 인간들을 위해 여전히 죽어간다.

실험실 동물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흰쥐일 것이다. 매년 국내만 300여만 마리의 쥐가 과학발전과 인류의 건강증진을 위한 ‘실험 도구’로 희생되고 있다.

본지는 흰쥐의 해를 맞아 지금 이 시간도 인류를 위해 죽어가는 흰쥐를 조명해봤다.

동물 실험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긴 역사를 거슬러 고대 그리스로 가보자.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에 보면 고대 로마에서는 돼지와 염소로 생체실험을 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의사인 알크마이온은 개의 눈을 해부해 시신경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최초의 동물 실험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 동물실험은 약리학을 포함한 독성평가, 백신, 품질관리를 위한 실험뿐만 아니라 일반기업체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실험실에 흰쥐가 많은 이유는?

흰쥐는 왜 실험용 동물로 많이 쓰일까? 동물 실험에는 주로 생물학적으로 사람과 흡사한 쥐, 토끼, 원숭이 등의 동물을 많이 사용하는데, 쥐는 다른 동물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쉽게 번식하고, 가격이 저렴해 특히나 실험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쥐는 포유류 중에서도 설치류에 속하는데, 생후 한 달이 지나면 새끼를 가질 수 있다. 암컷 한 마리는 6개월 동안 대략 120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실험실에서 쥐가 많이 사용되는 것은 단지 번식력이 뛰어나고 싸기 때문만은 아니다. 쥐는 새끼를 많이 낳고 주기가 짧아 세대를 거치는 실험에 용이하다.

쥐가 한 번에 낳는 새끼는 5~10마리인데 그 새끼가 다시 새끼를 낳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불과 9주밖에 걸리지 않는다. 신약 등의 독성을 검증할 때 후손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보기에도 아주 유리한 것이다. 인간을 대상으로는 수백년에 걸쳐 이뤄져야 하는 실험을 1~2년 정도로 단축할 수 있다.

실험에 주로 사용되는 쥐는 크게 두 종류로 마우스(생쥐, Mus musculus)와 래트(쥐, Rattus norvegicus)로 나눠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흰색 쥐(마우스)는 모든 실험에 빠지는 곳이 없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18년 동물실험 및 실험동물사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 동물실험윤리위원회가 설치된 385개소의 기관에서 사용한 동물은 총 372만 7163마리로, 이 중 설치류로 구분되는 마우스와 래트의 비율은 각각 73.5%(273만 9198마리), 8.6%(32만 896마리)로 총 82.1%(306만 94마리)에 해당한다.

동물실험을 위해선 반드시 동물실험계획서를 작성하게 되는데, 동물의 종류, 사용 방법, 실험 방법 등에 따른 ‘고통 등급’을 매긴다.

이에 따라 A부터 E까지로 그룹을 나누는데, A등급은 죽은 생물체나 식물 등을 이용한 연구다. E등급으로 갈수록 극심한 고통이나 스트레스가 동반된다.

D그룹은 단시간에 경미한 통증과 스트레스가 가해지는 등급으로, D그룹에 사용되는 동물의 95%를 마우스(흰쥐)를 사용한다.

이렇게 많은 흰쥐들이 희생됐지만, 인간은 이들의 죽음에 대해 꽤나 오랫동안 무감각해왔다. 하지만 점차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조금씩 상황은 나아지고 있다.

동물실험 현황.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동물실험 현황.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인권 아닌 ‘동물권’

동물에 대한 생명윤리 논란이 꾸준히 일면서 2013년 유럽연합에서는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을 지정했다. 이는 세계로 점차 퍼져나가 우리나라 또한 2016년부터는 화장품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금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의약이나 신약 개발 등 분야에서는 여전히 동물실험이 실행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권뿐만 아니라 ‘동물권’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리의 관점에서 동물 역시 생명권이 있고, 학대를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동물실험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지속되면서 이를 대체하기 위한 수단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실험에는 이미 사망한 동물의 사체 생체조직을 사용하거나 3D프린터 같은 기술을 이용해 생체조직을 인공적으로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동물권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감에 따라 실험동물복지개선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다. 국내에는 실험동물의 윤리적 사용을 위해 2008년 1월 27일부터 ‘동물실험윤리제도’가 도입돼 시행되고 있다.

동물실험을 하는 병원, 제약회사, 대학, 연구소에서는 매년 ‘실험동물 위령제’를 지내며 인류의 건강증진을 위해 희생된 동물을 애도하고, 실험자들에게 생명 존중과 윤리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앞서 언급한 동물실험계획서도 이 같은 윤리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동물보호활동가들이 동물실험법강화 및 대체시험법의 의무화 등을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DB
동물보호활동가들이 동물실험법강화 및 대체시험법의 의무화 등을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DB

◆“동물권 존중” vs “동물 대체 불가능”

동물실험의 합당성에 대한 비판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모든 생명체는 고통을 피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들에 주어지는 ‘잔혹성’으로 생산되는 이익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표를 던진다.

동물실험 반대론자들은 실험이 성공적인 검증을 거쳐도 사람에게 나타나는 부작용이 없지 않다고 주장한다. 예를들면 1960년대 초반 임산부의 입덧 치료제로 사용된 약물인 탈리도마이드도 동물에게는 아무 반응이 없었지만, 사람에게는 기형아가 태어나는 등 큰 부작용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또한 동물을 통한 실험은 20~40%만 사람과 일치하지만, 인공피부 세포는 90% 이상의 효과를 얻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동물을 대신해서 줄기세포 기술이나 컴퓨터 모델링 등 새로운 과학기술이 계속해서 개발되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동물실험을 통해 암, 결핵, 에이즈 등에 대한 치료 방법을 개선해나가고 있으며, 지금의 기술로는 동물을 완벽히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도 예측 불가능인 경우가 많고, 인공피부 역시 실제 피부와는 차이가 있어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동물실험에 대한 찬반 논란이 계속되면서 동물을 대신할 완전한 대체재가 나오기 전까지 동물은 여전히 인간을 위한 ‘희생도구’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흰쥐의 해가 됐지만, 흰쥐는 여전히 슬프다.

쥐.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쥐.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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