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저녁이 머물다 -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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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머물다

박성현

바람이 불었네
미세먼지가 씻겨 간 오후
외투에 툭, 떨어진 햇살 한줌 물컹했네.
잠시 병(病)을 내려놓고 걸어 다녔네
시청과 시립미술관이 까닭 없이 멀었네
정동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해 기우는 서촌에서 부스럼 같은 구름을 보았네
물고기는 허공이 집이라 바닥이 닿지 않는데
나는 바닥 말고는 기댈 곳 없었네
가파르게 바람이 불어왔네
내 몸으로 기우는 저녁이 쓸쓸했네
쓸쓸해서 오래 머물렀네

[시평]

도시에서 살면서, 도시로 출근을 하며, 도시에서 밥을 먹고, 도시에서 일을 하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와 도시에서 잠이 드는 삶.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산다. 이러한 도시는 왠지는 모르겠지만, 때때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래서 바람이 불어와서 미세먼지가 말끔하게 씻겨 간 오후에도, 외투에 툭, 떨어진 햇살 한줌은 그저 물컹했을 뿐, 우리들의 산뜻함이 되지를 못한다.

그래서 그러한지는 몰라도, 이 도시에 서면 나도 모르게 모든 것들이 멀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의 모든 생활의 행정을 담당(?)하는 시청도, 우리의 삶을 때때로 정서적으로 만들어주는 시립미술관도, 우리의 삶으로부터 먼, 그래서 어쩌면 우리네 삶과는 무관한 듯, 전혀 낮선 모습으로 도시의 한 복판에 그저 우뚝 서 있으며, 때때로 우리의 시야를 벗어나곤 한다.

일상의 삶이 고만고만한 그런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 어쩌면 바닥 말고는 기댈 곳 없는 우리들. 그래서 가파르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스스로를 어쩌지 못하는 우리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그 저녁이면, 우리들 그래서 더욱 쓸쓸해지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도심 속, 우리 모두 오래오래 머물러야만 함은, 우리 모두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네 삶의 숙명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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