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계절이 변화하고 있다. 예년보다 길었던 올 여름은 추석이 지나고도 매미소리가 들리고 바깥 기온이 높다. 올해는 늦더위가 있다더니 정말 그렇다. 아침저녁에는 선선한 감을 느끼지만 한낮은 뜨거운 편이다. 9월 중순 이때쯤 햇볕이 고루 잘 비치면 곡식 열매들이 알차서 농부들이 좋아한다. 추석 전에 태풍이 지나가고 큰 비가 내려 보름달을 못 볼 줄 알았는데 다행히 비가 그치고 청명한 날씨로 인해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소원도 빌었으니 좋은 중추가절이다.

올 추석 밥상머리에는 예전처럼 여전히 정치 이야기들이 많이 올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오르내린 것은 역시 조국 법무부장관 이야기다. 한 달 이상 사회여론을 달궜던 조국 법무장관과 그의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여당이 애써 추석 화제에서 논외로 하자는 의도와는 다르게 시골 노인이나 도시의 중장년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오르내렸다. 난데없이 어느 국내의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추석 직전 다음 대선 후보 선호도를 조사했던바 거기에 조국 장관이 3위로 올랐다는 것인바, 이쯤 되다 보니 여론조사가 재밋거리로 흘러가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설문 물음이 좋다. “내일 당장 대통령을 선거한다면 어느 후보를 선택할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 여론조사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이 전국 조사대상자 1026명 가운데 7%를 차지했다는 것이니, 대상자 전부가 설문에 응했다면 약 70명이 조국을 후보자를 지지했다는 것이다. 하기야 추석 직전인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조사된 것으로, 시기적으로 보면 추석 직전이라 많은 사람들이 고향가기 바쁜데 수능고사 치듯 성의를 갖고 응답한 사람이 과연 얼마가 되겠으랴. 또 대선이 2년 이상 남은 실정에서 ‘당장’이라고 했으니 이외의 변수는 상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여론 조사에 관여했던 자는 “조국 장관을 선택한 자들이 40대 민주당 지지층들로 기존의 민주당 후보를 벗어나서 새로운 여권의 후보로서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난 번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국민들은 많은 의혹이 불거져도 ‘모른다’로 일관했던 조 장관의 태도에 국민 과반수가 법무부 장관으로 부적격하다고 낙인찍었음에도 40대 중년 중 민주당 지지층들은 조국 장관을 차기 대통령 후보감으로 보고 있는 시각은 아이러니하다.

여론은 우리사회의 어떤 사안에 관해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의견의 집합체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선택한 까닭을 정확히 알 수 없고, 당사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지지한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른다. 부정확한 경우로, 장난삼아 선호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고 보니 여론조사 자체에서 문제는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설문조사 시기와 대상자 및 그 수, 또 설문지 내용 등에서 표본집단 개개인의 선호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함에도 여론조사는 자체 결함이 많은 편이다.

정치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는 여론 정치다’라고 말한다. 현대사회에 들어서 그만큼 여론이 중요시된다는 것인바, 그런 까닭에 방송과 신문에서는 여론이란 구실로 특정사안에 대해 사실관계의 정리 또는 평가하려 들지만 의도하려는 쪽으로 흐르는 자기집단 중심적 사고에서 정확한 여론을 얻어낼 수 없다. 또한 여론이 어느 정도의 수치적 객관성을 지녔다고 해도 어떠한 여론조사의 결과가 사회현상과 국민의사를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좋은 사례가 정치나 이념과 관련된 청와대 청원게시판 란의 통계다. 국민여론조사에서 조국 후보자에 대한 장관 임명 반대가 50%를 넘는 상태에서 청와대 청원란의 통계치로 보면 임명 반대보다 임명 찬성이 훨씬 많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 국민의 반응과는 다른 내용이기도 해서, 그렇다면 청와대 청원란을 적극 이용하거나 거기에 의견을 게시하는 열성자들은 거의가 현 정부 지지자들이거나 집단화된 조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여론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닌, 일종의 사회현상을 알려주고 있는바 정확하다거나 부정확함을 확정적 개념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어떤 여론조사에서 의도성이 담긴다면 그에 대한 결과는 원집단의 의중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이 정치적 문제에서 ‘물타기’로 비일비재하게 동원되고 있는 장난질 여론조사인바, 당초 여론조사의 시초가 18세기 중엽 프랑스의 정치가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에 의해 전개된 것과는 천양지차다. 당시는 정부가 법규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의견, 여론에 근거해야한다는 것이 설득력을 얻었지만 변수가 많은 현대에 들어서서는 여론조사 기술 못잖게 가짜여론도 무시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여론이 사회현상을 간파하지 못하고 장난기 재미로 흘러가거나 가짜여론으로 왜곡된다면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단초로 작용하기에 충분한 우민(愚民)민주주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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