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제공 강진군청

월남사지(사진제공: 강진군청)
월남사지(사진제공: 강진군청)

 1400년 만에 햇빛 본 백제 절터

월남사지는 오래전부터 고려시대 절터라고 알려진 곳이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에는 ‘월남사재월출산남고려승진각소창유이규보비(月南寺在月出山南高麗僧眞覺所創有李奎報碑; 월남사는 월출산 남쪽에 있는데 고려시대 진각국사가 창건하였고 이규보가 찬한 비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진각국사의 법명은 혜심(慧諶). 전라남도 나주 출신으로 지눌의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의

제2세 사주(社主)가 되어 교세를 확장한 고승이다. 1234년 봄에 월등사(月燈寺)에서 제자들에게 “나는 오늘 고통이 매우 심하다”고 한 후 열반에 들었다. 혹 ‘월등사’가 월남사지의 전신은 아닐까.

<동국여지지>에는 ‘진각소창유이규보찬비금폐(眞覺所創有李奎報撰碑今廢)’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월남사는 17세기 중반에는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무위사 사적기에 ‘임진왜란 때 주변의 절이 모두 불타 사라졌다’는 내용이 있어 월남사도 이때 폐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월남사지에서 출토된 강진 와당(사진 제공: 강진군청)
월남사지에서 출토된 강진 와당(사진 제공: 강진군청)

그런데 2011년도 발굴조사 때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바로 이 절터에서 아름다운 백제 와당이 출토된 것이다. 이전까지 전남지방에서 백제 절터가 찾아진 전례가 없었다. 이번 발굴로 6~7세기로 올라가는 백제시대 가람이 강진에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해져 위대했던 백제 불교사 연구의 지평을 넓힐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월남사지 와당은 백제 전성기 무왕 대 익산 제석사지(帝釋寺址)나 미륵사지(彌勒寺址)에서 출토된 와당을 빼닮고 있다. 연꽃은 넓고 정제되어 있으며 연꽃 끝에는 장식성이 가미되기도 했다. 부여시기 와당의 단조로움에 비교하여 보다 화려한 모습이다. 태토는 유백색이고 연질이며 부드럽다. 이 시기 백제 와당은 문화를 전해준 남조 와당보다 더욱 정교하고 아름답다.

월남사 삼층석탑(사진 제공: 강진군청)
월남사 삼층석탑(사진 제공: 강진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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