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출처: 연합뉴스)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이민환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대화 재개를 준비하고 있는 남측을 향해 중재자가 아닌 당사자가 될 것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남북관계의 개선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13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열린 최고인민회의 2일 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조선당국은 추세를 봐가며 좌고우면하고 분주다사한 행각을 재촉하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가자 돼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위원장은 “북남관계개선의 분위기를 계속 살려나가자면 적대적인 내외 반통일, 반평화 세력들의 준동을 짓부셔버려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일관한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과 함께 허울만 바꿔 쓰고 이미 중단하게 된 합동군사연습까지 다시 강행하면서 은페된 적대행위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남조선군부호전세력의 무분별한 책동을 그대로 두고, 미국의 적대시정책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북남관계에서의 진전이나 평화번영의 그 어떤 결실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때늦기 전에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민족의 운명과 전도를 걸고 북남관계개선과 평화통일에로 향한 역사적 흐름에 도전해나서는 미국과 남조선보수세력의 책동을 단호히 저지파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또 “남조선당국이 진실로 북남관계개선과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갈 의향이라면 우리의 입장과 의지에 공감하고 보조를 맞추어야 하며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적 행동으로 그 진심을 보여주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하게 주문하기도 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게 미국과 북한 사이의 중재자 역할이 아닌 ‘같은 민족’으로서 북한과 한 편이 돼 달라는 요구로 풀이된다.

북한은 앞서 지난달 북미협상의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하겠다는 우리측 외교부 올해 업무계획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지금 남조선 당국은 말로는 북남선언들의 이행을 떠들면서도 실지로는 미국 상전의 눈치만 살피며 북남관계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한 아무런 실천적인 조치들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에 대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할 말은 하는 당사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 역시 그간 동맹국인 한국에 ‘중재자’ 역할 자체가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는 게 아니냐며 서운함을 토로해왔고 북한이 ‘빅 딜’을 받아들일 수 있게 설득해달라고 한국에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한 강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자기가 생각하는 빅딜에 대해서 설명하고 김 위원장을 설득해달라고 몇 번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이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중재’로 설명해 의미가 잘못 전달됐다”면서 “중재는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하는 것으로, 미국 측에서 상당히 불편한 감정을 표시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후 한국 정부는 ‘중재자’ 대신 ‘촉진자’라는 표현을 더 사용하는 분위기다.

북한과 미국 모두가 한국에 ‘중재자’가 아닌 한 편이 돼 달라고 압박하는 셈이다.

지난달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남한 정부는 중재자가 아니라 플레이어’라는 발언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자기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얘기를 인용한 것으로 안다. 꼭 한국 정부의 역할을 폄훼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김 위원장이 공식적으로 우리측에 “중재자가 아닌 당사자가 돼 달라”고 주문한 만큼 한국 정부가 북미 양측의 기대를 충족하면서 중재 역할을 하기는 쉽지 않는 국면이 조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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