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영철 수습기자]한 남성 노숙인이 30일 서울역 인근에 홀로 앉아 있다. ⓒ천지일보 2019.1.30
[천지일보=김영철 수습기자]한 남성 노숙인이 30일 서울역 인근에 홀로 앉아 있다. ⓒ천지일보 2019.1.30

코앞으로 다가온 설날 연휴, 서울·영등포역에서 노숙인 만나보니

노숙자 대다수 “명절에 북적이는 역 싫어… 나와는 상관없는 일”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해마다 명절이 돌아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슬프지, 가족들 소식이 궁금해도 이 꼴로 어떻게 보러갑니까….”

30일 서울역 한복판에서 만난 허름한 바지위에 두툼한 겨울 옷 차림의 노숙인 안모(50, 남)씨는 이같이 중얼거리며 소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의 주변에는 빈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안씨는 거리에서 생활한지 2년이 되간다. 서울역 인근 교회에서 주는 무료점심을 먹기 위해 항상 역을 찾는다는 그는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이 다가오면 쓸쓸한 마음은 배가 된다고 했다.

김씨는 “날씨가 덥거나 추운 것보다 명절 때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에서 제일 부러우면서도 가슴은 쓰리다”면서 “어디론가 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 마냥 부럽다”며 고개를떨궜다.

설날을 앞두고 서울역은 어느 때보다 분주한 분위기였지만 노숙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보였다. 이들은 오히려 사람들로 붐비는 역 안이 불편하고 짜증스럽기만 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에게는 모처럼 다가온 설날의 설레임보다는 당장 차가운 밤바람을 어디서 피할까에 대한 고민이 우선인 듯 보였다.

서울역 노숙인들. ⓒ천지일보 DB
서울역 노숙인들. ⓒ천지일보 DB

이날 오후 서울역 구석에 모인 10~20여명의 노숙자들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안주도 없이 소주를 들이키고 있는 노숙인들은 명절 이야기가 나오자 하나같이 표정을 구기며 싫다고 했다.

충청남도가 고향이라는 고광우(63, 남)씨는 이번 추석에도 고향을 찾아 갈 생각을 차마하지 못한다. 안씨는 “보고 싶은 가족들은 다 있지만 10원도 없는 처지에 만나서 뭘 하겠느냐”면서 “처지가 이래서 가족들을 보러가진 못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쓸쓸하긴 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설날이라고 특별할 건 전혀 없다”며 “급식소 가서 떡국이나 주면 먹을 생각”이라고 했다.

또 다른 노숙인 한모씨는 “돌아갈 고향도 없고 기다려주는 가족도 없는데 명절이 왜 기다려지겠냐”며 “명절은 오래전부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됐다”고 푸념했다.

영등포역 인근 공원에서 만난 여성 노숙인 최수정(가명, 68, 여)씨 역시 명절에 갈 곳이 없다. 그의 고향은 경기도 대전, 17살 때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맨몸으로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추위를 피해 역 안에서 보낸다. 꽤 오랜시간 거리에서 지냈다는 그에게 가족이나 친구는 없었다. 최씨는 “이제는 구정이 뭐고 신정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며 “가족과 연락이 끊겨 연락할 가족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 노숙인 김모(50, 여)씨는 “결혼도 안했고 부모님도 돌아가셔서 남아있는 가족이 없다”며 “설에는 사람들이 몰리는 역 주변을 떠나 조용한 곳에서 지낼 생각”이라고 했다.

서울역 노숙인들. ⓒ천지일보 DB
서울역 노숙인들. ⓒ천지일보 DB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소병훈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노숙인 대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의 노숙인은 2018년 3193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거리 노숙을 택한 이들은 9.1%로 전체의 약 290명이다. 거리 노숙인이 주로 밀집돼 있는 곳은 129명이 있는 서울역(44.5%)이었다. 다음으로 시청·을지로입구역(15.5%), 영등포역(15.2%) 순이었다.

이해숙 서울꽃동네 사랑의집 원장은 “명절에 만나는 노숙인들은 평소보다 더 상실감이나 우울감을 보이기도 한다”며 “설날을 앞두고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을 대상으로 방한용 점퍼와 양말겨울 외투를 나눠주는 등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명절에도 집에 가지 못하는 노숙인 등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설 위문품과 연탄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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