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으로 다가온 설날 연휴, 서울·영등포역에서 노숙인 만나보니
노숙자 대다수 “명절에 북적이는 역 싫어… 나와는 상관없는 일”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해마다 명절이 돌아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슬프지, 가족들 소식이 궁금해도 이 꼴로 어떻게 보러갑니까….”
30일 서울역 한복판에서 만난 허름한 바지위에 두툼한 겨울 옷 차림의 노숙인 안모(50, 남)씨는 이같이 중얼거리며 소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의 주변에는 빈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안씨는 거리에서 생활한지 2년이 되간다. 서울역 인근 교회에서 주는 무료점심을 먹기 위해 항상 역을 찾는다는 그는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이 다가오면 쓸쓸한 마음은 배가 된다고 했다.
김씨는 “날씨가 덥거나 추운 것보다 명절 때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에서 제일 부러우면서도 가슴은 쓰리다”면서 “어디론가 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 마냥 부럽다”며 고개를떨궜다.
설날을 앞두고 서울역은 어느 때보다 분주한 분위기였지만 노숙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보였다. 이들은 오히려 사람들로 붐비는 역 안이 불편하고 짜증스럽기만 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에게는 모처럼 다가온 설날의 설레임보다는 당장 차가운 밤바람을 어디서 피할까에 대한 고민이 우선인 듯 보였다.
이날 오후 서울역 구석에 모인 10~20여명의 노숙자들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안주도 없이 소주를 들이키고 있는 노숙인들은 명절 이야기가 나오자 하나같이 표정을 구기며 싫다고 했다.
충청남도가 고향이라는 고광우(63, 남)씨는 이번 추석에도 고향을 찾아 갈 생각을 차마하지 못한다. 안씨는 “보고 싶은 가족들은 다 있지만 10원도 없는 처지에 만나서 뭘 하겠느냐”면서 “처지가 이래서 가족들을 보러가진 못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쓸쓸하긴 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설날이라고 특별할 건 전혀 없다”며 “급식소 가서 떡국이나 주면 먹을 생각”이라고 했다.
또 다른 노숙인 한모씨는 “돌아갈 고향도 없고 기다려주는 가족도 없는데 명절이 왜 기다려지겠냐”며 “명절은 오래전부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됐다”고 푸념했다.
영등포역 인근 공원에서 만난 여성 노숙인 최수정(가명, 68, 여)씨 역시 명절에 갈 곳이 없다. 그의 고향은 경기도 대전, 17살 때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맨몸으로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추위를 피해 역 안에서 보낸다. 꽤 오랜시간 거리에서 지냈다는 그에게 가족이나 친구는 없었다. 최씨는 “이제는 구정이 뭐고 신정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며 “가족과 연락이 끊겨 연락할 가족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 노숙인 김모(50, 여)씨는 “결혼도 안했고 부모님도 돌아가셔서 남아있는 가족이 없다”며 “설에는 사람들이 몰리는 역 주변을 떠나 조용한 곳에서 지낼 생각”이라고 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소병훈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노숙인 대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의 노숙인은 2018년 3193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거리 노숙을 택한 이들은 9.1%로 전체의 약 290명이다. 거리 노숙인이 주로 밀집돼 있는 곳은 129명이 있는 서울역(44.5%)이었다. 다음으로 시청·을지로입구역(15.5%), 영등포역(15.2%) 순이었다.
이해숙 서울꽃동네 사랑의집 원장은 “명절에 만나는 노숙인들은 평소보다 더 상실감이나 우울감을 보이기도 한다”며 “설날을 앞두고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을 대상으로 방한용 점퍼와 양말겨울 외투를 나눠주는 등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명절에도 집에 가지 못하는 노숙인 등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설 위문품과 연탄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