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의 두 얼굴① 범죄온상] 낡은 비닐·곰팡이·갈라진 벽, 을씨년스러워… “방치하면 화 키워”
[빈집의 두 얼굴① 범죄온상] 낡은 비닐·곰팡이·갈라진 벽, 을씨년스러워… “방치하면 화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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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사람의 손길이 끊긴 골목 곳곳에 쌓인 쓰레기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천지일보 2019.1.30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사람의 손길이 끊긴 골목 곳곳에 쌓인 쓰레기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천지일보 2019.1.30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사회 문제가 되는 빈집 대책으로 조례안을 앞 다투어 내놓고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빈집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여전히 방치돼 있는 게 사실이다. 빈집을 그대로 두면 범죄 및 안전사고의 온상이 될 뿐만 아니라 도심 속 흉물로 남아 미관을 해칠 염려가 있다. 이에 본지는 직접 빈집을 찾아 살펴보고, 방치된 빈집의 실태와 더불어 정비된 빈집의 올바른 예를 찾아봤다.

방치된 성북구 빈집 가보니

갈수록 느는 빈집 사건·사고

“선제적 방지 노력 필요해”

[천지일보=이혜림·홍수영 기자] 지난 21일 오후 6시 19분께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서문동의 한 2층 폐건물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 불로 노숙인 A씨가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지난해 11월에도 이곳에서 불이 났지만 별다른 조처 없이 방치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빈집들이 별다른 대책 없이 방치되면서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청주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처럼 매서운 추위를 피해 노숙자가 빈집을 오가고 불을 피워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빈집 문제는 비단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본지는 설 연휴를 일주일여 앞둔 25일 빈집이 많다는 서울 성동구 금호동 한 주택가를 찾았다. 겉모습은 일상적인 주택가와 다를 게 없지만 인적이 드문 골목을 따라 몇 걸음을 떼자 금세 비어있는 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빈집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니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는 누렇고 그을린 종이와 비닐이 바닥에 널브러져 제법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인적이 끊긴 지 한참 된 듯하다. 내부로 연결됐던 것으로 보이는 가스 호스는 외부에서 잘려져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알려주듯 녹슨 현관문엔 거미줄만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오래 방치된 우편 수취함에는 색이 변하고 곰팡이가 핀 우편물들이 가득 있었다. ⓒ천지일보 2019.1.30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오래 방치된 우편 수취함에는 색이 변하고 곰팡이가 핀 우편물들이 가득 있었다. ⓒ천지일보 2019.1.30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집도 비어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래 방치된 우편 수취함에는 색이 변하고 곰팡이가 핀 우편물들이 가득 차 있다. 그중엔 수도·가스청구서도 있었는데 마지막 날짜는 지난해 8월이었다.

기자가 잠금장치가 안 된 파란 현관문을 손으로 슬쩍 밀어보니 ‘끼익’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쉽게 열렸다. 현관문을 열자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잡초로 가득찬 작은 마당이 나왔다. 건너편에는 ‘기억’자 형태의 구조인 집이 있는데 지붕 위에 있던 낡은 비닐들이 머리카락처럼 축 늘어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집은 보일러실, 방 2개로 구성돼 있었다.

안쪽에 있는 보일러실로 가보니 입구부터 무성한 거미줄 때문에 호스 등 흔적만이 보일러가 놓였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방문도 쉽게 열렸다. 한평 남짓한 방은 곳곳에 곰팡이 흔적뿐, 가구나 살림 등이 없어 비교적 깨끗했다. 노숙자나 비행 청소년이 마음만 먹으면 들어와서 잠시 추위를 피하기 충분해 보였다.

30년 동안 세탁소를 운영했다는 최선호(가명, 70대) 할아버지는 세탁물을 배달하며 동네 곳곳을 누빈 덕에 동네 집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는 “오래 살다 보니 생일 케이크 들고 오면 누구 생일인지도 안다”며 “지금 당장 떠오르는 빈집만 5곳이 넘는데 찾아보면 훨씬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한평 남짓한 방은 곳곳에 곰팡이가 보였으나 가구나 살림 등이 없어 비교적 깨끗했다. 노숙자나 비행 청소년이 마음만 먹으면 들어와서 잠시 추위를 피하기 충분해 보인다. ⓒ천지일보 2019.1.30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한평 남짓한 방은 곳곳에 곰팡이가 보였으나 가구나 살림 등이 없어 비교적 깨끗했다. 노숙자나 비행 청소년이 마음만 먹으면 들어와서 잠시 추위를 피하기 충분해 보인다. ⓒ천지일보 2019.1.30

빈집에는 각각 사연이 있었다. 최 할아버지는 “저 윗집은 죽은 집주인이 조카에게 살라고 집을 줬는데 조카가 병을 얻게 됐다”며 “원 집주인도 죽고, 조카 가족도 집을 비워 빈집이 됐다”고 설명했다.

사연이 많아도 험한 세상에 치안이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다. 이 동네에서 30년 동안 살았다는 이기종(75) 할아버지는 “위쪽으로 빈집과 곳곳에 빈 상가가 많아서 경찰에 말했는데, 경찰이 ‘범죄예방을 위한 방범용 CCTV를 많이 설치해서 괜찮다’고 안심시켰다”며 “그 때문인지 예전에는 불량청소년이나 노숙자들이 오가며 거주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요즘은 안 보이는 것 같긴 한데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딸 가족과 함께 산다는 김순남(77) 할머니는 “40여년 살면서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면서도 “나는 괜찮은데 초등학생 손자들이 밤중에 빈집이 있는 길로 다니면 아무래도 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빈집 날로 늘지만 대책 無

방치된 빈집은 범죄 및 안전사고의 발생지가 될 수 있고 주거환경을 악화시켜 슬럼화를 유발하는 등 사회 문제로까지 연결된다. 빈집은 날로 늘어가고 있으나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없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017년 현재 전국의 빈집(2017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은 126만 4707호로 전체 주택의 약 6.7.%에 이른다. 2016년 한국국토정보공사가 발간한 ‘대한민국 2050 미래 항해’ 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 36만 5466호에서 2015년 106만 8919호, 2017년 126만여호까지 빈집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보고서는 주택 및 가구 미래예측 모형을 이용해 시도별 빈집 증가량을 예측했는데 이대로라면 2050년 전국의 빈집은 302만호로 전체 주택의 10.1% 수준까지 증가한다.

지난해 11월 국회입법조사처가 펴낸 ‘빈집 정비 및 활용을 위한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빈집이 장기간 방치될 경우 도시 미관 악화와 쇠퇴로 이어질 수 있고 여러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커진다.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25일 빈집이 많다는 서울 성동구 금호동 한 주택가의 모습. 더는 사람이 지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내듯 내부로 연결됐던 것으로 보이는 가스 호스는 외부에서 잘려져 있다. ⓒ천지일보 2019.1.30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25일 빈집이 많다는 서울 성동구 금호동 한 주택가의 모습. 더는 사람이 지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내듯 내부로 연결됐던 것으로 보이는 가스 호스는 외부에서 잘려져 있다. ⓒ천지일보 2019.1.30

주택 밀집 지역에 방치된 빈집은 장시간 방치될수록 건축물의 구조 및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해 화재 발생의 발원지가 될 가능성이 크고, 불이 날 경우 주변 주택가로 불이 퍼질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또 벽·기둥·지붕 등 건축 구조물 유실로 불안전한 건축물은 도시경관·미관을 해칠 수 있고, 청소년들의 탈선과 범죄 장소로 이용될 소지도 있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실제로 앞서 소개한 청주의 사례 외에도 2017년 12월 전북 군산 빈집에서 불이 나 신원미상의 남성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해 3월엔 부산 동래구의 한 빈집 담벼락이 강한 비바람에 무너져 인근 주민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특히 지난 2010년 여중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김길태가 범행을 저지른 곳도 빈집이었다.

2017년 제정된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은 전국적으로 증가하는 빈집을 체계적으로 정비·활용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이 법에도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인명피해가 발생한 청주 폐건물은 두 달 전에도 불이 났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돼 있었다. 특례법 적용대상이 ‘주택’에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청주시의 빈집 리스트엔 이 건물이 올라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빠른 시일 내에 정부 차원에서 빈집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무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미국 뉴욕시도 버려진 집에 대해 도시의 쇠락을 막기 위해 관리에 나선 입장”이라며 “우리는 아직 초기 단계인데, 더 심해지기 전에 지자체에서 빈집이 방치된 곳에 공공예산을 들여 선제적인 방지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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