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바꿈 사업 주차장 전후모습. 지난해 10월 충남 아산시 도심에 흉물로 방치됐던 빈집을 철거해 임시 공용주차장으로 바꿨다. (제공: 아산시)
탈바꿈 사업 주차장 전후모습. 지난해 10월 충남 아산시 도심에 흉물로 방치됐던 빈집을 철거해 임시 공용주차장으로 바꿨다. (제공: 아산시)

‘악성 빈집’만 2만여 가구

정부, 특례법 제정… 재정↑

주민, 스스로 재생사업 참여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은 근린환경 악화, 도시 쇠퇴로 이어지는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주택재개방·재건축사업으로 철거를 앞둔 곳을 제외하고 1년 넘게 전기세·수도세·재산세 등을 쓰지 않는 이른바 ‘악성 빈집’만 따지면 2만여 가구로 추산된다. 고령화와 구도심 쇠퇴 등으로 빈집은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다.

빈집의 원인은 다양하다. 도시정비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구역이 부동산 경기 침체 및 사업성 저하로 사업이 취소되거나 지연돼 해당 정비구역에 주거·상업 기능이 상실되면 빈집이 발생한다. 또 주택의 수요보다 공급이 급증하거나 주택시장에서 부동산 거래가 감사할 경우, 매매·이사, 미분양·미입주 등의 사유로 발생한다. 특히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는 고령화와 농촌 공동화, 산업구조 변화로 인구가 줄어 빈집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빈집 발생 원인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2015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수도권은 매매·임대·이사 등의 원인으로 발생한 빈집이 49.3%(13만 3890호)로 가장 많았다. 이어 미분양·미입주는 21.2%(5만 75530호), 일시적(가끔) 이용은 12.9%(3만 4909호) 순으로 나왔다.

수도권 이외 지역의 경우 빈집은 매매·임대·이사 47.3%(37만 7563호)로 1위를 차지했고, 일시적(가끔) 이용은 26.6%(21만 1899호)다.

빈집이 비어있는 기간은 수도권의 경우 3개월 미만이 50% 이상이지만, 수도권 이외의 지역은 3개월 미만이 36.6%였으며, 12개월 이상 비어있는 빈집도 32.2%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외국, 빈집 지원제도 ‘다양’

외국의 경우 빈집 관리에 적극적이다. 빈집 대국 일본은 2103년 빈집이 전체주택(5758만 6000호)의 14.2%(819만 5600호)에 달하자 2015년부터 단계별로 공공이 활용하고 최종적으로 철거하는 법령을 시행 중이다. 법령에 따라 정부가 보수비용을 지원하는 대신 화재 위험이 높은 빈집은 지자체가 강제철거 할 수 있다. 지자체가 인터넷이나 택지·건물 거래 업자의 유통망에 빈집 정보를 올려 입주를 희망하는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다.

또 빈집을 수리해 지역 집회소나 이웃 교류 공간, 농촌 숙박 체험시설, 노인 공동체 시설, 주차장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18세 이하 자녀를 키우거나 60세 이상 고령자 등이 거주하는 가구가 빈집에 입주할 경우 최대 4만엔(약 41만원)의 월세를 지원하는 제도도 있다

영국은 2003년부터 빈집 확인과 활용을 위한 조치를 공익목적으로 규정한 ‘지방정부법’에 따라 지자체가 우선 관리권을 갖고 강제 매입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지방정부는 재량에 따라 빈집을 신고한 당사자의 카운슬택스(주택 가치에 따라 매기는 지방세)를 최장 12개월 면제할 수 있다. 주민이 소방서나 경찰서 등 편리한 곳에 신고하면 지방정부가 취합해 관리하는 방식이다. 지방정부가 빈집의 임대·사용 등에 대해 소유자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면 강제매입 명령을 내릴 수 있고, 빈집의 토지나 건물을 취득해 주택으로 사용할 수 있어 모범적인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비슷한 사례로 국민 5명 가운데 1명꼴로 노인인 프랑스도 빈집을 리모델링해 평균 임대료의 80% 수준으로 부동산시장에 공급하는 사업을 지자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실효성 있는 빈집 제도 마련해야”

우리나라 정부도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하고 지난 2월부터 빈집 실태조사와 정비계획 및 선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례법은 기존의 ‘건축법’ ‘농어촌정비법’으로 전국에 증가하는 빈집을 체계적으로 정비·활용하기에 한계가 있어 마련됐다.

이에 따라 빈집 관리 권한은 지자체에 지자체장에게 있다. ‘건축법 제 81조의 2’를 보면 지자체장은 집의 사용 여부를 확인한 날부터 1년 이상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주택을 빈집으로 정의하고, 건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소유자에게 철거 등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 지자체장은 빈집 철거를 명한 경우 소유자가 특별한 사유 없이 따르지 않으면 직권으로 철거할 수 있다.

지자체 대부분은 단순히 오래된 빈집을 철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저렴한 임대사업 및 주택자산과 문화유산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지난해 10월 충남 아산시(시장 오세현) 도심에 흉물로 방치됐던 빈집을 철거해 임시 공용주차장으로 바꿨다. 주차장은 실옥동 17-24, 읍내동 341-2번지에 방치된 빈집 철거 부지를 활용한 주차대수 12면 규모로, 4천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시는 빈집 소재 토지 소유자와 최소 3년간 무료임차 및 주차장 무료개방, 재산세 일부 감면을 조건으로 협의해 빈집 철거 동의를 받아 진행했다.

경남 진주시는 정부의 도시재생사업 중 하나인 ‘새뜰마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국비 45억 1200만원, 도비 5억 8000만원, 시비 13억 5400만원 총 64억 4600만원 등 정부가 돈을 내면 주민이 스스로 재생에 참여하는 사업이다. 그 결과 3년 전, 산비탈 경사지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노후 주거지가 형성돼 화재에 취약하고 보행에 불편을 겪던 달동네 옥봉 지역이 하나둘씩 새 옷으로 갈아입으며 문화마을로서 활기를 찾았다. 리모델링으로 깨끗하게 변신한 어린이집은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으며 지난 19일에는 주민커뮤니티센터인 ‘옥봉루(玉峰樓)’ 문을 열어 마을공동체의 거점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이 아직 시행 초기 단계라 위 사례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지자체는 손에 꼽힌다. 대다수가 철거 등 행정절차만을 언급하는 수준이어서 구체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집이 없어 결혼도 못 하고, 한쪽에서는 빈집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실에 맞춰 변화된 대응책으로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인숙 입법조사관보는 “빈집 정비 및 활용을 위한 제도적인 근거는 마련됐으나 현재는 제도 시행 초기 단계라 앞으로 법령과 세부지침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빈집을 정비하거나 활용하기 위한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고, 빈집 유형에 따라 관리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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