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참배하러 가기위해 대웅전으로 이동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21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참배하러 가기위해 대웅전으로 이동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21

두 편에 걸쳐 스님들 비위 보도
방영 파장… 불교 신뢰도 추락
설조스님 단식으로 비난 커져
압박에 설정 총무원장 자진사퇴
후임 원행스님, 화합·혁신 강조
올해는 조계종단 정상화 될까?

성역처럼 여겨졌던 종교계의 방어막이 무너졌다. 거룩하게만 여겨졌던 성직자들의 썩어 문드러진 부패상을 보다 못한 종교단체 구성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간 성직자들을 보호하며 그들의 위신을 세워줬던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이젠 반전이다. 각 종교단체의 지도자들의 권력화된 행태는 도마에 올랐고, 재정문제는 법의 심판을 받았다. 음지에서 행해지던 성문제까지 미투 운동으로 터져나왔다. 천지일보는 지난해 사회 매체가 핫이슈로 다룬 주요 종교이슈 들을 되짚어보고 부패한 기득권 종교계가 살기 위해 올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봤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지난해 한국 불교계 최대 종파인 대한불교조계종은 부패상들이 드러나는 ‘다사다난’한 한해를 겪었다. 기득권 권승(핵심 권력을 잡고 있는 스님)들의 비리로 쌓여왔던 종도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며 불자들은 거리로 나섰다. 불심은 급기야 현직 총무원장 퇴출이라는 사상 초유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조계종 사태는 지상파 MBC PD수첩이 지난 5월 1일과 29일 ‘큰스님에게 묻습니다 1·2편’을 잇따라 방영하면서 촉발됐다.

PD수첩은 설정스님과 현응스님 등 종단 수뇌부 핵심 인사인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설정스님 등 요직을 거친 스님들에 대한 비위를 보도했다. PD수첩의 보도로 국민과 불자들이 바라보는 조계종에 대한 신뢰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MBC PD수첩이 1일 ‘큰스님에게 묻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에게 제기된 학력위조, 100억대 부동산 보유, 은처자 의혹 등을 보도했다. 또 교육원장 현응스님과 관련해서도 성추행 및 유흥업소 법인카드 결제 의혹 등을 제기했다. (출처: 해당방송 화면캡처) ⓒ천지일보 2018.5.2
MBC PD수첩이 1일 ‘큰스님에게 묻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에게 제기된 학력위조, 100억대 부동산 보유, 은처자 의혹 등을 보도했다. 또 교육원장 현응스님과 관련해서도 성추행 및 유흥업소 법인카드 결제 의혹 등을 제기했다. (출처: 해당방송 화면캡처) ⓒ천지일보 2018.5.2

◆MBC PD수첩 보도로 몸살 앓는 조계종

‘큰스님께 묻습니다’ 1·2편 방송을 앞두고 조계종으로부터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이 제기되는 등 조계종 측의 강한 반발이 있었지만, 방송 당일인 5월 1일 오후 법원이 이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리며 무사히 정상 방송됐다.

1일 방영된 ‘큰스님에게 묻습니다’에서는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에게 제기된 학력위조, 100억대 부동산 보유, 은처자 의혹 등이 다뤄졌다. 또 교육원장 현응스님과 관련해서도 성추행 및 유흥업소 법인카드 결제 의혹 등이 제기됐다.

설정‧현응스님과 관련한 의혹을 방영한 데 이어 두 번째 방송에서는 그간 불교계에서 논란이 된 이른바 ‘도박 16국사’로 불리는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을 비롯한 조계종 권승들의 도박 비리 의혹, 전 호계원장 법등스님의 성폭행 의혹, 제2교구본사 용주사 주지 성월스님의 은처자(숨겨둔 자식) 의혹 등이 보도됐다.

이 같은 스님들의 의혹들이 연달아 방송되면서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종단 안팎에서는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게 되는 계기가 됐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전국승려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참석자들은 총무원장 직선제 도입, 재정의 투명화 및 수행 보조비 지급, 국민 참회와 종단개혁을 촉구했다. ⓒ천지일보 2018.8.26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전국승려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참석자들은 총무원장 직선제 도입, 재정의 투명화 및 수행 보조비 지급, 국민 참회와 종단개혁을 촉구했다. ⓒ천지일보 2018.8.26

◆의혹 해명? 교권자주혁신위 ‘설정라인’ 논란

당시 조계종은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PD수첩이 제기한 내용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이르면 3개월, 늦어도 6개월 안에 의혹들을 해명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도 종단 안팎의 여론은 급격히 차가워졌다.

논란이 커지자 설정스님은 자체진상 규명에 나서겠다며 ‘불교파괴 규탄 및 교권수호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에는 당시 중앙종회의장 원행스님,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금산사 주지 성우스님, 총무원 총무부장 정우스님, 전국비구니회장 육문스님과 이기흥 중앙신도회장 등이 맡았다. 그러나 교권자주혁신위 또한 설정스님 측 인사들로 꾸려져 신뢰를 얻지 못한 채 공방만 이어지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했다.

이에 설정스님의 ‘은처’ 의혹을 받는 김모씨가 모습을 드러내 PD수첩에서 제기된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며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설정스님을 둘러싼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급기야 조계종은 설정스님 퇴진을 압박하고 나섰고, 급기야 불교 종단의 정신적 최고 지도자인 종정 진제스님까지 나서 총무원장의 퇴진 요구에 기름을 부었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즉각 퇴진 의사를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 2018.8.21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즉각 퇴진 의사를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 2018.8.21

◆설정스님 탄핵… “산으로 돌아가겠다”

설정스님을 향한 비판은 불교계 시민사회단체와 승가단체까지 번졌다. 이들은 조계사 앞에서 매주 목요일 촛불법회를 개최하며 매일같이 설정스님을 압박했다.

설정스님 조기 퇴진에 이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불국사 주지를 지낸 원로 설조스님의 무기한 단식 농성이었다. 설조스님은 조계종 개혁을 위해선 총무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며 41일간 단식했다. 설조스님의 단식 선언 후 수많은 불교단체가 지지에 나서고 성명을 쏟아냈지만, 주류 언론들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언론이 보도하지 않으니 불교계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설조스님의 단식에 대해 관심 갖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덩치 큰 언론들이 부랴부랴 보도하기 시작했다. 주류 언론들이 움직인 이유는 간단했다. 언론계 대선배인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88세의 설조스님이 단식에 나선 사연을 전하며 언론들의 보도행태에 일침을 가했다.

주류언론이 설조스님 단식 보도를 시작한 데 이어 단식 16일째인 5일 조계종 의결기구인 원로회의 의원 5명의 스님은 단식장을 방문해 종단 현안을 다룰 원로회의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사퇴 압박을 견디지 못한 설정스님은 탄핵 확정을 하루 앞둔 8월 21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잘못된 한국 불교를 변화시키기 위해 종단에 나왔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산중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 같다”며 자진사퇴했다.

원로회의 불신임안 가결은 설정스님이 종단 내부 지지를 받지 못해 이뤄진 결과라는 게 중론이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PD수첩 등 공중파를 통해 문제제기가 이뤄져 종단 위상에 악영향을 미쳤다. 또한 명확한 해명 없이 오로지 결백만을 주장한 부분도 종도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MBC PD수첩이 29일 공개한 두 번째 방송 예고편 캡쳐.
MBC PD수첩이 29일 공개한 두 번째 방송 예고편 캡쳐.

◆각종 언론에 몰매 맞은 조계종

이번 사태는 주류 언론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각종 언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앞다퉈 보도했고, 분석기사와 논설들을 쏟아냈다. 동아일보 문화부 전문기자 김갑식 논설위원은 지난 7월 ‘조계종의 뜨겁고 슬픈 여름’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1994년 종단 개혁으로 정당성을 지녔던 조계종단의 틀이 낡은 옷이 됐고, 개혁을 주도했던 그룹 역시 퇴진을 요구받는 처지가 됐다며 개탄했다.

김 논설위원은 “종단 정치의 산실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종회 중심에서 총무원장 선출을 포함한 주요 권한이 승가공동체에 넘겨져야 한다는 게 중론”이라며 “비구와 비구니, 출가자와 재가자의 관계도 시대에 맞게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10월 김우일 대우M&A 대표는 조세금융신문 칼럼을 통해 권력이 집중돼있는 총무원장의 권한을 분산, 해체할 필요가 있다며 전문경영인을 도입하는 것을 제안했다.

김 대표는 “대한불교조계종은 조선시대의 불교계가 아니다”며 “자본주의와 문명의 발전으로 종단의 재산과 인력은 대규모 기업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이제 스님의 역량으로는 주체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에 그는 하루빨리 전문경영인을 도입해 업무효율성을 제고하고, 사판승은 이판승으로 승화돼 오로지 중생들의 진리를 탐구·지도하는 진정한 종단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중의소리는 최근 사설에서 이번에 새로 총무원장에 당선된 원행스님과 조계종 지도부는 ‘화합’과 ‘혁신’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총무원장 직선제와 관련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며, 종단 내부와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것이 바로 화합과 혁신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는 이유에서다.

설정스님의 중도 퇴진 뒤 치러진 선거에서 신임 원장으로 선출된 원행스님은 설정스님 퇴진 과정에서 불거진 종단 내 갈등과 분열을 추스르는 일이 급선무라고 보고 올해 종책과제로 소통과 화합, 혁신을 거듭 강조했다. 과연 원행스님은 종단의 혼란을 수습하고 잃어버린 종단에 대한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을까.

MBC PD수첩 ‘큰스님에게 묻습니다 2’ 방송 캡처. ⓒ천지일보 2018.5.30
MBC PD수첩 ‘큰스님에게 묻습니다 2’ 방송 캡처. ⓒ천지일보 2018.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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