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라면 - 이우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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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이우걸(1946~  )
 

라면 하면 삼양이다 그 라면을 오래 먹어서
삼양동이라 누가 외치면 고향 동네 이름 같다
꿈에 본 외갓집같이 무턱대고 가고 싶은

졸병 시절 보초 서고 끓여 먹던 라면발 끝엔
얼굴 모르고 주고받던 위문편지 사연같이
밤새워 다 못 헤아릴 그리움이 따라 나왔다

오는 비 핑계 삼아 라면을 끓이면서
어제처럼 그려지는 추억을 되새기면서
참 많이 만나고 헤어진 인정에 젖어본다
 

[시평]

‘라면’이 우리나라에 나온 것은 196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된다.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받으며 나타난 라면. 그러나 라면은 이렇듯 환영을 받으면서도, 주된 식품으로 결코 환영을 받지 못하는 슬픔을 지니고 있는 식품이다. 주식 이외에 임시로, 때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으로 한 끼를 때우는 정도의 식품으로 인식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라면이 군에 보급이 된 것은 60년대 후반부터로 기억된다. 일요일을 기해 점심때에 나오는 라면 급식은 어떤 의미에서 특식이기도 했다. 한꺼번에 모두 큰 솥에 넣고 끓여서 불어버린, 그러나 별도로 지급되는 계란 하나는, 우리들 쫄병들에게는 일요일 오후를 기다리게 하는 특식이 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방금 밥을 먹고 뒤돌아서도 이내 배가 고픈, 젊디젊은 나이의 군인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요긴한 간식거리이기도 했다.

어려운 시절, 배고픈 시절, 고단했던 시절, 그 무엇보다도 절실했던 식품이었기 때문에 라면은 우리의 추억이기도 하다. 마치 얼굴 모르고 주고받던 위문편지 사연같이, 우리 젊은 시절의 그리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라면은 오는 비를 핑계 삼아 끓이기도 하고, 그래서 또 어제처럼 그려지는 추억을 되새기기도 하며, 지금은 희미한 기억으로나 남아 있는 참으로 많고도 많은 인정, 만나고 헤어진 그 인정에 젖을 수 있는 그리운 식품이기도 하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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