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연합뉴스) 미국의 대북 실무협상을 이끄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미국의 대북 실무협상을 이끄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차 한미 워킹그룹 등 일정 소화

北에 타미플루 지원 문제도 해결

‘제재 해제’ 방점인 北호응 미지수

[천지일보=손성환 기자] 북미대화 교착 상태에서 한국을 찾은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3박 4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22일 귀국했다. 방한 기간 비건 대표는 인도적 대북 지원 시사 등 대북 유화 메시지를 내놓았다. 이로써 교착 상태를 면치 못하는 북미대화의 불씨를 살릴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우선 비건 대표는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상응 조치로 인도적 대북 지원을 제시했다. 지난 19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비건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북한에서 운영하는 많은 인도적 지원 단체가 국제 제재를 엄격히 집행하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며 “내년 초 미국의 대북 지원 단체와 만나 적절한 지원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건 대표의 대북 유화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1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워킹그룹 2차 회의를 한 비건 대표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철도 연결사업과 관련해 착공식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철도 연결사업 착공식 행사 자체는 유엔과 미국 대북 제재에 걸리지 않는다. 다만 행사를 위해 북한으로 반출하는 물품에 대한 대북 제재 예외 인정이 필요했다.

이 본부장은 “남북 간 유해발굴 사업도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게 됐다”면서 “북한 동포에 대한 타미플루(독감 예방접종) 제공도 해결됐다”고 말했다. 이번 타미플루 지원은 대북 제재 저촉사항이 아닌 것으로 미국 측에서도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조만간 북측에 관련 계획을 통지하고 지원 물량과 지원 시기 등을 남북 실무협의를 통해 정할 방침이다. 북한도 본격적인 동절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고려해 조속한 시일 내 지원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치료제 지원에 소요되는 비용은 남북협력기금에서 충당된다.

이번 회의에선 약 800만 달러 규모인 국제기구를 통한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도 계속 논의하기로 했다. 이 본부장은 “미국도 인도적 지원은 유엔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에 따라 이 문제를 리뷰하기 시작했다”며 “리뷰 과정에서 계속 함께 의논해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건 대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년 1~2월로 언급한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의지도 재확인했다. 비건 대표는 “북한의 협상 파트너들과 다음 단계 협의로 넘어가기를 열망하며, 그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에 대해 얘기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비건 대표는 20일 처음으로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는 9.19 남북 군사합의 이행에 따른 긴장완화 상황을 시찰하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비건 대표는 이 밖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도 면담하는 등 한반도 정세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20일(현지시간) “우리는 새해 들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새해 첫날로부터 그리 머지않아 함께 만나 미국에 가해지는 이 위협을 제거하는 문제에 대한 추가 진전을 만들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김 위원장의 비핵화 약속 이행을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이런 발언은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도 북한과 대화의 끈을 이어가며 빠른 시일 내 2차 정상회담을 열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비건 대표와 폼페이오 장관이 일제히 대북 유화 메시지를 보내며 대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지금으로선 미국의 유화 메시지에 북한이 긍정적으로 호응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특히 북한이 그동안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해 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일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정체된 원인을 진단하는 개인 논평에서 “우리는 제재 따위가 무섭거나 아파서가 아니라, 그것이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한 미국의 진정성을 판별하는 시금석이기 때문에 문제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선제조치에 대한) 상응 조치로 요구한 것은 미국이 결심하기 곤란하고 실행하기 힘겨운 것도 아니다”면서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종식과 부당한 제재 해제 등 사실상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유엔 총회는 지난 17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본회의 열어 북한인권 결의안을 표결 없이 컨센서스(전원 합의)로 채택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반발을 사고 있다. 유엔은 지난 2005년부터 14년 연속 북한인권 결의안을 통과시켜 왔다. 대남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22일 개인 명의 논평에서 “미국 주도 하에 북인권 결의안이라는 것이 조작됐다”며 “우리에 대한 제재압박의 폭을 넓히고 도수를 더욱 높여보려는 데 불순한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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