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에르미타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이라서 그런 것일까.

원래 이곳은 러시아 황제가 살던 겨울궁전이었다. 1711년 표트르 대제가 건물을 지어서 1712년에 예카테리나 황후와 재혼 피로연으로 사용한 이래, 표트르는 1719~1720년에 두 번째 궁전을 지었다. 세 번째 궁전은 예카테리나 1세가 지었고, 네 번째 궁전은 표트르의 딸 옐리자베타 여제가 지었다. 1754~1762년에 지어진 궁전은 1000개 이상의 방과 사방이 터진 건물로 바로크 양식의 절정이었다.

겨울궁전이 국립박물관이 된 것은 1764년에 예카테리나 2세(재위 1762~1796)가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2세로부터 부채에 대한 상환금으로 225점의 그림을 받은 것이 시발(始發)이다.

예카테리나 2세는 남편 표트르 3세를 186일 만에 폐위시킨 여제였다. 표트르 3세는 표트르 1세의 외손자인데, 옐리자베타 여제가 후손이 없자 황제가 됐다. 그런데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프로이센에게 승리했지만 친독일적 외교로 비난을 받았고 러시아 정교회를 탄압해 폐위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일 출신 예카테리나 2세는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다.

한편 예카테리나 2세는 미술에 관심을 보여 그림을 모았는데 그녀가 죽을 당시에 3996점이나 됐다.

원래 ‘에르미타시(The Hermitage)’란 이름은 프랑스어로 ‘은둔처’란 의미인데 예카테리나 2세가 즐겨 쓴 말이다. 그녀는 ‘시계의 방’에서 극히 한정된 사람과 환담하면서 소장품 보는 것을 좋아했다.

한편 에르미타시 박물관은 1852년에야 일반에게 공개됐는데, 이곳은 고대 이집트와 스키타이 황금 유물, 그리스-로마의 조각,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미켈란젤로 등은 물론 고흐, 피카소, 루벤스, 렘브란트, 로댕 등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과 조각 작품들이 있다. 특히 렘브란트의 명화 ‘돌아온 탕자’ 등은 알렉산드르 1세가 1814년에 구입한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의 컬렉션이다.

3백만점이나 되는 박물관의 전시물을 1분씩만 보아도 5년이 걸린단다. 박물관을 모두 둘러보려면 27㎞를 걸어야 한다. 두 시간 정도의 단체 관람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나 다름없지만 러시아 황제가 살던 화려한 궁전을 걸으면서 명작들을 감상한다니 정말 설렌다.

박물관 입구의 검색대를 통과하니 휘황찬란하게 장식된 요르단(Jordan) 계단이 보인다. 흰색 계단에는 빨간 카펫이 깔려 있고, 금장 장식과 조각들 그리고 천장의 그림에 압도당한다. 탄성(歎聲)이 절로 나온다.

이래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에르미타시 박물관 도록을 선물하면서 박물관을 꼭 한 번 방문할 것을 권유한 것일까.(2018.6.23. 신문기사)

계단의 이름 요르단도 흥미롭다. 예수님이 광야의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곳이 요르단(요단) 강이다(마태복음 3장). ‘요르단 강 건너서 만나리’란 찬송가 구절도 생각난다.

계단은 1월 19일 예수 세례 대축일과 관련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날 네바 강에서 강물로 세례를 받는다. 세례를 위해 얼어붙은 강에 뚫은 얼음 구멍 이름이 ‘요르단’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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