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시론] 어용(御用)이 아닌 쓴소리… 왜곡된 ‘평등’이 빚을 혼란
[천지일보 시론] 어용(御用)이 아닌 쓴소리… 왜곡된 ‘평등’이 빚을 혼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용(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부나 그 밖의 권력기관에 영합해 자주성 없이 행동함을 낮잡아 이르는 말), 이 어용에는 여러 부류가 있겠으나 대표적으로 어용지식과 어용종교와 어용언론이 있다. 즉, 3대 어용이며, 어용지식은 어용을 형성해 가는 이유이자 근간이며, 어용종교라 함은 대표적으로 한국기독교가 하나님 대신 일본 천황을 신으로 숭배한 사건이나 유신정권 삼선개헌 지지와 전두환 정권 지지와 매 정권마다 조찬기도회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을 참석시켜 지지 내지 아부해 오면서 ‘정교(政敎)분리’라는 헌법 제20조 2항에 정면 배치되는 불법을 몸소 실천해온 정치 종교지도자들의 근현대사가 그 증거며, 어용언론 역시 어용종교와 마찬가지로 매 정권에 빌붙어 사실(팩트)과 진실을 배척하고 정권의 홍보지로 전락한 사례들이 그 증거다.

이 같은 3대 어용이 오늘의 대한민국 부패의 온상(溫床)이며 그야말로 적폐다. 문제는 이 어용의 문화는 관성(慣性)의 법칙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더 야비하고 교묘하게 진행 중이라는 데 심각성이 크다.

이러한 현실에서 어용화되지 않은 언론과 그 언론의 오피니언은 오늘도 쓴소리를 낼 것이다.

무슨 말인가. 모든 과거와 지난 정권은 적폐로 규정하면서,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구호와 함께 출범한 문재인 정부다.

지난 10일, 숙명여고 학부모들이 ‘시험지 유출 규탄 촛불집회’를 진행하면서 손에 든 피켓에는 “기회는 평등했습니까, 과정은 공정했습니까, 결과는 정의롭습니까”라는 물음이 적혀 있었다. 과연 문재인 정부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가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그러면 왜 유독 현 정부에 대해 가시같은 비판과 비난이 이어질까. 언급한대로 ‘나는 정의, 너는 적폐’라는 이분법적 논리와 함께 출항을 시작한 문재인호이기 때문이며, 합리적이고 공정하지 않은 치우치고 편향되고 자기중심적 잣대로 모든 과거를 심판했고 지금도 심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대안과 대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행하지 못하고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결과는커녕 대책발표와 함께 온 나라는 혼란으로 치닫게 되니 그야말로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 부존재나 다름없다.

상도유치원 붕괴 전 접수된 민원을 무시하고 사고 후에도 구청 대응 논란은 도마 위에 올라와 있고, 미니 신도시 개발 후보지 리스트가 정부와 관계기관 회의 후 회수하지 않아 유출됨으로 춤추는 부동산 시장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는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자고 나면 터지는 행정의 무능상태는 국민들의 인내심을 시험이라도 하려는 듯 끝이 보이질 않는다.

자고나면 터지는 사건 사고의 이면에는 어김없이 관계공무원들의 실책이 도사리고 있으니 복지부동이며 안일무사며 기강해이며, 나아가 지도자의 무능과 지도력의 부재다.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평등의 원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가 ‘도전과 응전’이라 했듯이, 인류의 역사와 자유민주주의 시장원리는 경쟁에서 출발한다. 이 경쟁을 통해 개인과 단체와 국가는 진보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삼라만상 그 어느 것이든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 게 없으니 곧 이치다.

현 정부는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에 칼을 대는 데서 모순은 시작됐다고 봐 진다. 따라서 이 경쟁으로 나타나는 결과는 차별이다. 이 차별에 대해 그야말로 ‘차별’로 보느냐 ‘평등’으로 보느냐의 차이로 등장한 게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다.

이제 더 나아가서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에게 정치이념을 솔직히 밝힐 때 혼란은 멈출 것이다. 현재까지 대한민국은 헌법에 명시된 대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하며 자유 시장경제 원리를 쫓아 왔다. 그런데 작금에 와서는 사회주의적 원리에 근간을 둔 제도와 정책이 발표되면서 온 나라는 혼란과 혼돈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비근한 예로 ‘소득주도성장’을 고집한다. 소득주도성장이론은 성장이론이라기보다 분배이론이다.

2019년도 정부 나라살림 예산은 지난해보다 약 10%(9.7%) 증액된 470조 5천억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일자리예산 등 복지예산이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질보다 양을 앞세우고, 성장이란 이름을 앞세운 분배에 함몰돼 있다. 예산 증액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쓸 것인가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인기 영합주의라 하듯, 출범과 함께 시작된 포퓰리즘, 요즘은 포용국가라는 신조어가 등장해 관심을 끌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 정책의 기조를 분명히 밝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간다”는 속담처럼, 그레샴의 법칙 즉,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이론처럼, 잿더미 위에서 일궈 낸 눈부신 경제 성장이 유의미하지 않게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분배에 대한 고민 또한 반드시 필요하지만 시장원리에 의한 평등의 가치는 존중돼야 하고 나아가 구분돼야 하며, 무엇보다 왜곡된 평등관은 국가의 녹을 먹는 사람들의 복지부동과 기강해이의 첩경임을 명심해야 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