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시론] 평화통일, ‘정부 목소리’ 아닌 ‘국민 목소리’로 만들어가야
[천지일보 시론] 평화통일, ‘정부 목소리’ 아닌 ‘국민 목소리’로 만들어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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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있을까. 어렵더라도 그 생각을 오피니언 리더로서 꼭 피력해야겠다.

“김정은이 유엔총회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를 칭송하는(sing praises) 사실상의 대변인을 뒀다. 바로 문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끝내고 미국으로 달려가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난 후, 9월 26일 오전 9시 38분(미국시간) 블룸버그통신이 올린 ‘한국의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유엔 수석대변인이 되다’라는 기사의 일부분이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란 말처럼, 급격히 변해가는 세계의 흐름을 실감하게도 하는 내용이다. 나아가 시대의 급속한 흐름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기사 내용을 보면 볼수록 왠지 조롱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니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다.

‘도끼로 제 발등 찍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믿음이 물거품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주나라 강태공에 얽힌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란 말처럼, 이젠 성급한 그 생각과 쏟아낸 발언들을 주워 담을 수도 없게 됐다면 한 나라 지도자의 말이기 때문이며, 그 결과는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저버리게 하기에 충분하며, 국민총화에 심대한 저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지도자의 한 마디 한 걸음은 신중해야 한다. 반세기를 훌쩍 넘겨 오늘에까지 이른 부정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역사와 증거와 증인들이 목도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속의 행보라는 점을 간과한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게 했다.

북한 지도자와 정권은 분명 동족상잔이란 비극을 통해 400만이 넘는 동족을 죽게 했으며, 이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나아가 끊이지 않는 도발로 참혹한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해 왔으며, 심지어 자신의 혈족과 친인척까지 참으로 입에 담을 수 없는 방법으로 살상해 왔으며, 인민들은 자신의 정권유지의 희생양으로 여겨져 왔다. 어찌 이뿐이겠는가. 그랬다 할지라도 이제는 문 대통령의 주장대로 변화하고 있다면 고무적인 일이며, 어찌 보면 사실이고 현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변화의 목적과 성질과 정도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지도자로서 국민과 세계무대에서 단정적 확정적 표현을 써가며 김정은과 그 정권을 대변하는 듯한 인상을 짙게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더라도 북한 정권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고 북한의 과거 소행을 간단하게라도 짚어주고 난 후, 지금 북한 정권의 진의는 이러하다는 식으로 국민들의 자존심도 의식하면서 무게와 설득력이 실린 간단한 호소였다면 대한민국 국민들도 나아가 세계도 더 나아가 북한도 오히려 진정성 있는 울림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수석 대변인’이라는 기사 제목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뜻있는 대한민국 국민들 대부분이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통일과 평화를 나쁘다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화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참된 의미가 말하듯,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뜻하듯, 대한민국 국민들을 먼저 하나로 만드는 게 힘이고 평화의 지름길이라는 진리를 외면하고 있다. 정부의 목소리가 아닌 국민의 목소리 나아가 세계의 목소리가 동토의 땅을 녹이게 되고 걸어 잠근 빗장을 풀게 한다는 이치를 문재인 정부는 제발 깨달았으면 좋겠다. 마치 의도적으로 평화를 반대하는 세력을 만들어가려는 듯한 국정운영은 평화가 가는 길이 될 수 없다. 나만 평화의 사도고 너는 평화 훼방꾼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국민들의 생각을 분리시키려는 적의를 가져서는 진정한 대한민국 정부도 평화의 정부도 될 수 없다. 평화는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평화요 통일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알리고 싶다.

심각한 것은 오늘날 대한민국 국회의 여당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회의다. 청와대와 정부의 호위무사에 불과하다는 여론에 귀 기울여야 한다. 과거 정권들의 실정이야 낱낱이 밝혀졌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과거에는 싸우면서도 물밑에선 협상이 이루어졌고 결과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피아를 정확히 구분해 놓고 나만 정의니 협상도 필요 없다는 식의 정국운영이 계속되고 있다. 가진 자가 손을 내밀지 않으면 영원히 하나 될 수는 없다. 오죽하면 많은 국민들이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보다 북한정권을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을 제기할까.

야당의 무조건적 반대 또한 지탄받아 마땅하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만약 야당의 반대가 없었다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경제정책 등을 포함한 정책의 결과는 어떻게 됐겠으며, 북한의 행보 또한 어떠했겠는가도 생각해 봐야 한다.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말처럼 그 결과는 불 보듯 훤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야당의 반대는 반대를 위한 반대보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비판이 돼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 이 나라는 국론분열, 남북문제, 한반도에 집중된 세계의 이목 등을 고려했을 때, 문 대통령은 투사적 가치관에 벗어나 그야말로 미시적·거시적 가치관을 겸비한 지도자로 변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감히 해 본다. 나라와 국민과 세계평화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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