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올드보이 노욕인가 경륜인가
[이재준 문화칼럼] 올드보이 노욕인가 경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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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신라 ‘헌화가’의 주인공 수로부인은 절세미인이었다. 그녀가 강릉으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 가는 길에 동해바다에서 스캔들을 만든다. 절벽에 피어 있는 철쭉꽃을 보고 갖고 싶었다. 

그런데 꽃을 따다 바친 장본인은 늠름한 남편이 아니라 시골의 한 노인이었다. 암소를 끌고 가던 이 ‘올드보이’는 아무도 꽃을 따다 비치는 사람이 없자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으로 올라가 꽃을 꺾어 바친다.

- 붉은 바위 끝에/ 암소 잡은 손을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意譯) -

노인은 향가를 잘 부르는 멋쟁이였다. 그의 아리아에 수로부인은 마음이 빼앗겼던 것은 아닐까. 수로부인이 용왕에게 끌려 며칠 후에 돌아왔다는 설화를 보면 외도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신라인들은 절세미인과 올드보이의 꽃에 얽힌 로맨스를 이처럼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이런 로맨스에 반해 전통 유교사회 이면에는 노인홀대 사례도 만연했던 모양이다. 조선 선조 때 문신이었던 이승증(觀瀾 李承曾, 1515~1599)의 시 무제(無題)가 세태의 이면을 보여준다.

- 부잣집 자제가 가난한 집 자제를 비웃고/ 젊은이가 늙은이를 비웃는 세상/ 이런 추태를 없앴을 수 있다면/ 중국의 태평성대와 다를 바 없지 않으리요(富家子笑貧家子 綠髮人譏子白髮人 若使世情無此態 義皇天地葛天民/意譯) - 

그래서 제왕들이 ‘기빈(耆賓)’이니 기로소(耆老所)를 만든 것인가. ‘기빈’은 중국에서 즐겨 쓴 용어로 노인을 귀한 손님처럼 예우한다는 뜻이며, 기로소는 임금이 특별히 나이 많은 관리들을 모아 격려하고 대접한 것이다. 

중국의 부잣집이나 관청에는 ‘耆賓’이라는 현판을 걸고 노인 존경 풍속을 고취시켰다. 조선은 명절 때가 되면 노인들에게 주식을 하사하고 100세가 넘는 노인들은 궁중으로 불려가 임금이나 태자의 등에 업히는 영광을 누렸다. 

나이 많다고 출사나 관리의 등용을 막는 법은 없었다. 백발의 나이에 과거에 합격, 말단 관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장인과 사위가 한 날 한 시에 과거에 급제, 동과계(同科契)에 가입 어깨동무하고 술을 마셨다. 충청도의 한 선비는 평생 과거 시험을 보았는데 고희가 넘어서 합격한 후 그 이튿날 세상을 끝냈다고 한다. 

미국의 전쟁 영웅인 고(故) 맥아더 장군이 즐겨 애송한 시 ‘청춘’은 사무얼 울만이 78세에 쓴 작품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젊은이다운 패기와 열정이 있으면 노인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 (전략)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중략)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 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 (하략) -

최근 각 당에서 원로정치인들의 재등장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젊은 정치인 사이에서 노치로 매도하고 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배우 최민식이 주연한 영화에서 유행한 ‘올드보이’란 지칭이 원로 정치인들에게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지금 한국의 정치, 정치인들은 본령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이들의 산만한 폭주를 잡아 줄 경륜이 필요한 때는 아닌가. 헌화가 주인공처럼 용기 있고 열정 있는 노인들은 올드보이가 아니다. 경륜 있는 이들이 필요한 시기는 바로 지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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