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허망한 보물선 신드롬
[이재준 문화칼럼] 허망한 보물선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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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천문학적 금괴를 싣고 가다 침몰됐다는 러시아 배 돈스코이호. 울릉도 바다 깊이 잠겨있는 이 배의 인양을 둘러싸고 한동안 화제가 만발했다. 여러 경로로 투자를 받던 회사대표가 돌연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으며 경찰이 본격 수사에 나섰다. 지금 정황으로는 사기사건으로 결론이 날 모양이다. 

보물선을 소재로 한 소설들은 인기가 있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소설은 보물선을 소재로 한 것으로 큰 상을 탔다. 주인공은 태평양전쟁 때 군산 앞바다에서 침몰한 보물선 이야기를 가지고 투자자를 모은다. 그러나 보물선 발견이 어렵게 되자 도피자 신세가 됐다. 보물선을 이용한 투자는 사기사건으로 결론을 맺는다. 

필자가 젊은 나이에 본 기억이 있는 헐리웃 영화 ‘디프(The Deep)’도 보물선을 소재로 한 것이다. 스킨 스쿠버를 즐기는 게일과 데이빗 부부는 신혼여행을 버뮤다로 떠난다. 부부는 뜻 밖에 깊은 바다 속에서 침몰된 난파선을 발견한다. 

그런데 선박 주변에서 고가의 중세 스페인 은화를 발견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부부는 의견충돌이 생기고 결국 보물선을 노리는 괴한들에게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다. 아름다운 신혼의 꿈은 갑자기 갈등과 공포로 변하는 것이다. 

현대작가 한가을이 쓴 ‘보물선 메릴호’는 SF물이다. 18세기 초 카리브해를 무대로 하고 있으며 평행우주론이란 과학적 상상력을 결합시킨 판타지로 화제를 모았다. 천재물리학자인 조씨는 자신의 저택 앞에 우연히 떨어진, 평행우주 간 여행을 할 수 있는 ‘허리케인의 눈’을 통해 어마어마한 부를 쌓는다는 줄거리다.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은 ‘보물섬’을 무대로 삼았다. 그가 꿈꾼 섬나라 율도국은 평소 조선사회에 대한 저항과 혐오의 반증으로 재물이 넘쳐나는 왕국이다. 홍길동은 보물섬에서 왕이 되어 70평생을 살았다.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의 주인공도 큰 섬에 들어가 도둑들의 장군으로 군림한다. 섬을 무대로 삼은 것이 홍길동전을 닮고 있다.허생은 일본 나가사끼(長崎)까지 식량을 배에 싣고 가 많은 돈을 벌어 호방하게 쓰며 살았다.

일본에는 ‘칠복신(七福神) 보물선’ 민속이 지금도 전해진다. 해마다 정월이면 사람들은 베개 밑에 일곱 명의 신이 타고 있는 보물선 그림을 넣어둔다. 새해 첫날 길몽을 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칠복신은 배에 식량과 보물을 가득 싣고 일본 연안에 닻을 내렸던 한반도인들이었다. 나가사끼항에서 굶주린 배를 해결해주었던 허생의 보물선은 실화이며 이것이 설화로 남은 것은 아닐까. 

한반도 연안 바다 속에는 고대의 많은 배가 침몰돼 있다. 그동안 군산, 보령 앞바다를 비롯 서해 인근 연안에서는 많은 고 선박들이 찾아졌다. 신안 앞 바다에서 찾아진 해저 유물선은 중국 송나라 시대의 것으로 용천 청자 등 귀중한 명품들이 가득했다. 중국이 송나라 수출도자기라고 애써 폄하하지만 수량과 예술성은 세계적이다. 

고려시대 청자 가마터인 강진에서 출발, 개경으로 운항하던 배도 많이 발견됐다. 개중에는 보물급 고려청자도 있다. 오랫동안 수장된 유물이지만 보존상태도 좋다. 바다 밑 침몰선을 전담 인양 조사하는 수중 고고학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러시아 배 돈스코이호 사건은 소설과 같은 상황을 닮고 있다. 황당한 보물선 사기는 경제가 어려운 시기 등장하는 단골 메뉴였다. 무더위를 극복하기도 힘든 서민들이 허망한 신기루에 더 이상 속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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