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불법촬영(몰카)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혜화역 시위가 ‘촛불집회’의 상징성을 가진 광화문으로 장소를 옮겨 4일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4
경찰의 불법촬영(몰카)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혜화역 시위가 ‘촛불집회’의 상징성을 가진 광화문으로 장소를 옮겨 4일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4

혜화역 집회로 이름 알린 ‘불법 몰카’ 규탄 집회
광화문으로 자리옮겨 폭염 속 7만여명 대거 운집

‘찍지마’ 말기·남성 취재진 입장 불가 등 규정 多

[천지일보=이지예 기자] 경찰의 불법촬영(몰카)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혜화역 시위가 ‘촛불집회’의 상징성을 가진 광화문으로 장소를 옮겨 4일 진행됐다. 집회 규모도 주최 측 추산 7만여명으로 몸집이 커졌다. 여성만 참석하고 여성에 대한 의제로 꾸려진 시위에서 7만여명이 집결했다는 점은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그간 집회 성격을 놓고 ‘몰카 수사 비판’에서 ‘남성 혐오’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커짐에 따라 이번 대규모 집회로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렸다. 특히 행사를 주최하는 ‘불편한 용기’ 측이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WOMAD)’ 관련 논란에 일절 선을 그어왔지만 정체성 논란에 대한 의문도 끊이지 않았다.

이날 행사는 여론을 의식한듯 ‘행사 규정’에 많은 신경을 쓴 흔적이 비쳤다.

집회에서 논란을 샀던 ‘문재인 대통령은 재기하기 바란다’는 구호 등은 없어졌고 주최 측이 주장했던 ‘자칭 페미 문재인은 응답하라’는 문구를 외쳤다. 이들은 앞서 비판 여론이 일자 ‘재기’라는 뜻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하며 국민 지지를 얻은 대통령께 그 발언에 맞게 ‘페미 대통령’으로서 재기(再起)하라”는 뜻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유X무죄 무X유죄’ 등의 문구 등은 구호문에 여전히 포함됐다.

참가자들의 손에 들린 피켓에서는 ‘(불법촬영 장비) 설치는 네가 하고 제거는 내가 하네?’ ‘당신들의 일상을 왜 우리가 싸워서 얻어야 해’ ‘우리는 계란이 아니며 너희도 바위가 아니다’ 등 문구가 보였다.

또 영어로 작성된 ‘My life is not your porn(내 삶은 네 포르노가 아니다)’ ‘We are the courage of each other(우리는 서로에게 용기다)’ 등 한국의 불법촬영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영어 피켓도 등장했다.

주최 측은 참가자들에게 광화문 광장이라는 장소를 고려한 규정을 강조했다.

기본적으로 ‘생물학적 여성’들만 참석을 허용한다는 전제 아래, ‘여성의 분노’를 뜻하는 빨간색 복장과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선글라스와 모자, 마스크 준비 등을 공지했다. 그러나 복장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참여를 금지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또 취재진과 시민들의 촬영도 적극 협조하는 분위기였다. 그간 사진 촬영을 하면 ‘찍지마’라고 외쳤던 참가자들에게 주최 측은 촬영을 용인해줄 것을 당부했다. 남성 몰카를 거침없이 규탄하는 자리이면서도 광화문이 서울의 대표 관광지인 점을 유념해 달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촬영 거부 가이드라인을 바꿔 ‘찍지마’를 무조건 외치는 대신 참가자가 자신의 핸드폰으로 상대편의 모습을 찍어 증거를 수집해달라는 요청도 덧붙였다.

언론인의 취재 자체를 거부하는 대신 여성 취재진만 진입이 가능하도록 해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규정을 알지 못하고 집회현장을 찾은 남성 취재진들은 광장 길 주변부에서 원거리 촬영을 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광화문에서 4일 오후 열린 가운데 남성 취재진 입장이 불허돼 광화문 광장 밖에서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4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광화문에서 4일 오후 열린 가운데 남성 취재진 입장이 불허돼 광화문 광장 밖에서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4

모든 촬영물에서 시위자의 신원을 식별할 수 없도록 전체 흐림(강한블러) 처리를 요구했고 개별 시위자나 스태프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 요청도 일절 금지됐다.

이날 집회는 늦은 오후에 시작해 35도가 훌쩍 넘는 극심한 폭염 속에서 진행됐다. 주최측은 얼음물과 응급환자 부스 등을 서울시와 여성가족부가 지원한 데 대해 고마움을 표하면서도 “이런 집회 자체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목소리를 냈다.

한편 경찰의 몰카 편파 수사를 비판하기 위해 시작된 이 집회는 3달째 진행되고 있다. 첫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만 2000명이 모였고 2차 집회에서는 2만 2000명, 3차에서는 6만명의 여성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불편한 용기’ 측은 “홍익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의 피해자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경찰의 수사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며 “불법 촬영 피해자가 여성일 때도 신속한 수사와 처벌할 것”을 거듭 촉구하고 있다.

이날 집회는 불법촬영 피해자에 대한 묵념 의례로 시작해 구호·노래, 재판, 삭발 퍼포먼스, 성명서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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