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속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된 축구 매니아 고교 친구와 월드컵
[스포츠 속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된 축구 매니아 고교 친구와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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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고교 친구와의 오래된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지난 6일 현충일에 육군 장교 출신의 고교 동창이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구의 성묘를 다녀왔다는 소식을 SNS 단체 카톡방에 올렸기 때문이다. 매년 현충일 때면 빠지지 않고 성묘를 가는데, 올해에도 84세의 친구 노모와 만났다고 전했다. 

친구가 군에서 순직한 것은 1981년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 때 강원도 철원 전방 고지에는 하얀 눈이 쌓였고, 매서운 강풍이 몰아쳤다. 최전방 사단 수색소대장으로 근무했던 친구는 비무장지대 GP 근처에서 눈길에 지뢰지대로 미끄러지면서 대인지뢰 폭발로 숨졌다는 게 당시 군측의 발표였다. 또래들보다 2살 많았던 친구의 죽음 소식을 듣고 나를 비롯한 여러 명의 고교 동창들은 친구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 등과 함께 군부대로 달려갔다. 군부대에서의 장례식, 국립묘지 안장식까지 함께 하며 슬픔을 나눴다. 매년 현충일이면 친구의 묘비 앞에 모였던 고교 동창들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 기억이 엷어져 갔는데, 올해 현충일을 맞아 다시 옛 일이 떠올랐다.

우리들은 실업계 고교인 서울공고 금속과에서 3년간 같이 한솥밥을 먹으며 축구로 깊은 우정을 나눴다.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친구를 알고, 이해하고, 서로 삶을 배울 수 있었다. 만약 축구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가까워질 수 없었을 것이다. 축구는 우리들의 또 다른 학교였고, 교실이었으며, 바른 교과서였다.  

친구는 침착했고 조용한 편이었지만 얼굴에는 어딘가 모르게 어두운 그늘이 있었다. 또래들보다 성숙했음에도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힘들어 보였다. 그의 집은 김포였는데, 부모님이 시장에서 행상을 하며 어렵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의 기를 살려주게 한 것은 축구였다. 드리블 능력과 개인기가 뛰어났던 친구는 반 축구대표로 센터포드를 맡아 전반적인 팀플레이를 이끌어 나갔다.

춘계 체육대회 때마다 열리는 과대항 축구대회에서 친구와 함께 축구멤버들은 열심히 볼을 찼다. 고교 1학년 과대항 축구대회 예선전에서 나는 라이트 윙을 맡았는데, 친구의 패스를 받아 골에어리어 중앙에서 강력한 슈팅을 골로 연결시켰다. 상대팀 골키퍼가 슛을 막다가 잘못 슬라이딩을 해 한쪽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던 것이 지금도 안타까운 순간으로 기억되기도 했다. 결승에서 우세한 경기를 하고도 아깝게 한 골을 내주고 준우승에 그쳤을 때, 아쉬움에 뜨거운 눈물을 같이 흘리기도 했다.

방과 후에는 서로 축구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며 호흡을 나눈 우리들은 서로간의 성격과 개성, 스타일 등을 알 수 있었다. 함께 기뻐하고, 행복하고, 서운해 하기도 하면서 여러 감정 등을 함께 공유하고 서로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해질 무렵, 운동을 마치고 같이 어깨동무를 하며 운동장을 빠져 나갈 때의 정겨웠던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밟힌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은 축구 그 이상의 많은 의미와 개인적 스토리를 생각나게 한다. 월드컵과 축구를 생각하면 나는 오래 전 고교 시절 동창들과의 추억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몸 속 깊이 숨어있던 축구에 대한 감성이 터져 나오는 것은 그만큼 어린 시절 축구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러시아월드컵도 많은 축구팬들에게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할 것이다. 진보와 보수, 잘 사는 자와 못 사는 자, 지배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 등 사회적 계층과 부, 권력의 유무를 넘어서 축구를 통해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하는 인류 문화를 만들어 나가자는 게 월드컵의 숭고한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된 축구를 좋아했던 친구의 영혼을 다시 위안하며 한국에 9회 연속 본선 출전한 이번 월드컵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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