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5월 31일부터 시작됐다. 31일 새벽부터 선거운동에 나선 후보들을 보노라면 그 엄청난 수고와 열정에 절로 박수가 나올 지경이다. 이미 예비후보를 거치면서 지칠 대로 지쳤을 텐데도 공식선거운동 첫날의 의미를 놓치지 않겠다고 새벽 0시부터 현장으로 나간 후보들이다. 웬만한 열정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강행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주민의 대표,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됐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좀처럼 분위기가 뜨질 않고 있다. 물론 앞으로 각 후보들이 지역 곳곳을 누비면 여론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은 다소 걱정이 될 정도로 지방선거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선거가 치러지면 우리 지역의 일꾼을 뽑는 전국적인 지방선거가  자칫 ‘깜깜이’와 무관심으로 지역발전의 자충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숨길 수 없다. 말로는 생활정치, 지역일꾼을 뽑아서 지역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의 뿌리를 다진다고 하지만 실상은 무관심과 냉소 속에 투표가 이뤄진다면 이는 지방자치의 비극이요, 민주주의의 위기로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 지방이 없다

우선 이번 6.13지방선거에 국민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배경은 3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선거정국을 뒤흔드는 최대 이슈가 북한 문제라는 점이다. 남북정상회담 두 차례를 비롯해 북미정상회담까지 숨 가쁘게 진행되는 초거대 이슈가 선거정국을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북핵 완전폐기와 종전협정 그리고 북미수교로 이어지는 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세기적인 이슈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보니 지방선거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는 결국 묻히고 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을 더는 미룰 수 없기에 이 문제는 감내해야 할 뿐이다. 지방선거의 유불리를 따질 이슈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두 번째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논리가 이번 지방선거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 어디를 보더라도 집권당인 민주당의 일방적 우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굳이 예외적인 곳을 찾는다면 대구, 경북 등의 일부 지역에 불과하다. 그렇다보니 이번 지방선거는 이미 끝났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대체로 특정 정당의 일방적 우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선거에 대한 관심도가 많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지금의 상황이 딱 이런 형국이라 하겠다. 냉철해야 할 ‘주민주권’을 생각한다면 아픈 대목이다.

세 번째는 이번 지방선거의 시선을 빼앗을 만한 인물이나 정책이슈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보니 언론이나 여론의 주목도가 떨어지고 지방선거 전체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각 지역의 정책을 꼼꼼하게 따져보면 주목할 만한 이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을 비롯해 경기도와 충남, 부산, 경남 등에서는 굵직한 지방선거 이슈가 이미 쟁점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 변수’ 때문에 언론의 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보니 생각만큼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남은 것은 주권을 행사해야 할 유권자의 몫이다. 북한 문제는 그대로 가되 중앙정치는 정치권의 논쟁일 뿐이다. 북핵 협상과 중앙정치의 공방전이 지방선거의 표심을 좌우할 핵심 쟁점은 아니라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각 지역의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는 ‘주민주권’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실천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야 주민의 선택을 받은 대표자들도 자랑스러워 할 것이며 또 그만큼의 책임의식도 커질 것이다. 혹여 어쩌다 보니 줄을 잘 서서, 또는 어쩌다 보니 갑자기 조성된 유리한 정세 덕분에 당선 됐다는 말이 나온다면 이는 결국 유권자를 모독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권자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북핵문제, 여야 공방전 등에 매몰되지 말고 원칙대로 우리 지역의 대표자를 잘 골라서 뽑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는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번 지방선거는 투표해야 할 대상이 광역단체장부터 기초의원까지, 일부 지역은 국회의원 재보선까지 많게는 8명이나 된다. 따라서 각 후보들을 일일이 체크해서 분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각 후보들의 면면이나 정책을 체크하고 나아가서는 경력과 평판까지 두루두루 따져본 뒤 투표하는 ‘핀셋 투표’가 필요하다. 이런 꼼꼼한 유권자들이 많아야 지방선거가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으며 민주주의의 기초를 탄탄하게 다질 수 있다. 일일이 따져보기 귀찮다고 해서 이른바 ‘줄투표(straight-ticket voting)’를 하는 것은 유권자의 가치와 명예,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남기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서 ‘지방 의제’가 소멸된다는 것은 결국 지방자치의 가치가 소멸한다는 것이며 동시에 ‘지방의 몰락’으로 귀결될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각 지역마다 독특한 방식의 지역발전과 문화, 역사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비록 지방자치의 역사는 일천할지라도 가는 곳곳마다 저마다 발전시켜 온 각 지역의 독특한 특성들은 곧 국가경쟁력과도 직결된다. 이제 한국의 지방자치는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할 시기이다. 따라서 지금은 유권자들의 수준 높은 의식과 참여가 더 적극적으로 요청되는 시기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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