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기록된다. 남겨진 유물은 그 당시 상황을 말해 주며 후대에 전해진다. 역사는 미래를 바라볼 때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같은 역사적 기록과 유물을 보관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장소가 박물관이다. 이와 관련, `이달에 만나본 박물관' 연재 기사를 통해 박물관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막국수체험박물관에서 막국수 면을 뽑아내고 있는 모습ⓒ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2
막국수체험박물관에서 막국수 면을 뽑아내고 있는 모습ⓒ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2

반죽을 ‘방금’ 눌러 뽑은 국수
농촌서 특별한 손님에게 대접
동치미에 마는 방식 북한 동일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막국수의 ‘막’은 ‘방금’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반죽을 방금 눌러 뽑은 국수가 막국수죠.”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고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막국수. 하지만 그 뜻을 모르고 먹는 이가 대부분이다.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 박정숙 해설사는 역사를 알면 막국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해설사는 “막국수는 메밀로 만드는데 면이 너무 연해 뚝뚝 끊어지는 성질이 있다”라며 “과거에는 거칠게 빻아진 상태의 반죽을 국수틀에 넣고 바로 내려서 동치미에 말아서 먹었다”고 설명했다. 막국수는 원래 겨울철에만 먹었다고 한다. 반죽을 직접 눌러서 만들다 보니 농번기가 다 끝난 농한기에 만들어 먹은 것이다. 이 같은 막국수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막국수체험박물관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2
막국수체험박물관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2

◆막국수의 유래와 역사

막국수 혹은 메밀국수는 바이칼호·중국 북동부·아무르강 일대의 동북아시아·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인 메밀로 만든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6세기경 삼국시대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

막국수는 강원도 고유의 향토음식이다. 강원도는 메밀의 수확량이 많고 맛이 좋아 일찍부터 메밀요리가 발달했다. 특별한 재료가 없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막국수는 먹을 것이 많지 않던 시절 농촌에서 특별한 손님에게 대접하던 별미식이었고 산간지방에서 긴 겨울을 나던 유용한 음식이었다.

막국수는 메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해 국수틀에 눌러 끓는 물에 바로 삶아 건진 후 찬물에 식힌 사리에 잘게 썬 김치나 오이 등을 얹어 동치미 국물을 부어 먹었다. 원래 막국수는 양념이 많이 들어가지 않은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으로 젓갈, 고기류, 마늘, 파 등을 쓰지 않았다.

막국수체험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전통막국수  생산과정이  담긴  옛  사진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2
막국수체험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전통막국수 생산과정이 담긴 옛 사진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2

◆언제부터 만들어 먹었나

고려 고종 때의 향약구급방에 의하면, 사찰에서 승려들이 만들어 팔았다는 구체적인 기록이 있어 처음에는 사찰음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서도 구황식물로 적극 권장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박 해설사는 “메밀이 척박하고 서늘한 지방에서 잘 자랐기 때문에 산간지방이 많은 북쪽과 강원도 지역에서 많이 재배했다”며 “특히 고랭지인 강원도는 메밀의 재배조건이 적합해 수확량이 많고 맛도 좋아 메밀요리가 발달했다”고 말했다.

전통방식으로 메밀을 갈던 맷돌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2
전통방식으로 메밀을 갈던 맷돌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2

 ◆막국수에 얽힌 일화

막국수에 얽힌 일화도 있다. 첫 번째는 고려 무신정권 때 최정예부대인 ‘삼별초군’의 마지막 항쟁지 제주도에 얽힌 내용이다.

박 해설사는 “제주도 사람이 삼별초군을 도와 몽골에 맞서 싸웠다. 그래서 몽골인이 제주도 사람을 싫어했다”라며 “당시 몽골인이 메밀을 먹고 소화가 안 되거나 이상 증상이 나타났는데, 제주도 사람을 나쁘게 할 생각으로 그 씨앗을 전해주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제주도 사람은 소화가 잘되는 효능이 있는 ‘무’와 메밀이 환상의 궁합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이를 같이 먹어 더욱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심지어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은 제주도에서 재배돼 제주도 사람의 삶에 도움을 줬다.

두 번째 일화는 진나라 때 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축조할 때다. 이때 한반도 사람을 많이 데려다가 노동을 시켰는데, 일이 다 끝나고 노임 대신 메밀을 줬다. 소화가 잘 안 된다는 점을 이용해 한반도 사람의 건강을 해쳐서 자신들에게 도발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지혜를 발휘해 소화를 잘 시키는 무와 함께 먹었다.

과거 춘천 인근 댐 수몰 지역민들이 춘천 근교에 이주해 호구지책으로 메밀국수를 만들어 팔아 춘천에서 막국수가 발달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사진은 춘천 소양강댐 소양호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2
과거 춘천 인근 댐 수몰 지역민들이 춘천 근교에 이주해 호구지책으로 메밀국수를 만들어 팔아 춘천에서 막국수가 발달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사진은 춘천 소양강댐 소양호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2

◆막국수, 왜 춘천에서 유명할까

춘천막국수의 유래에 관한 배경은 몇 가지가 전해진다. 조선시대부터 춘천 인근의 인제, 양구, 화천 등지에서 재배된 메밀이 물길을 따라 춘천에서 모여져 제분되고 다시 한양으로 내려갔는데, 제분소 주변에서 메밀가루로 국수를 눌러 먹던 것이 춘천 막국수가 됐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춘천지역이 을미사변 이후 의병의 발원지 중 하나였는데, 의병과 가족들이 일본군을 피해 깊은 산에 들어가 화전을 일구며 정착했다. 1910년 한일합방 후에도 이들은 하산하지 않고 그곳에 정착하고 살게 됐는데, 이후 그들이 짓던 메밀이 읍내에 내려오면서 춘천에 막국수가 자리 잡았다고 한다. 또 한국전쟁 직후 생활고 해결을 위해 국수를 만들어 장사하게 되면서 막국수가 대중화됐다는 설도 있다.

한편으로는 1960년대 화전정리법과 춘천 인근 댐 수몰 지역민들이 춘천 근교에 이주해 호구지책으로 메밀국수를 만들어 팔아 춘천에서 막국수가 발달했다는 설도 전해진다.

이후 1970년대 후반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호반의 도시로 알려진 춘천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막국수가 춘천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북한에서 넘어와 50년간 춘천에서 막국수 장사를 한 홍길두(92) 할머니가 막국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2
북한에서 넘어와 50년간 춘천에서 막국수 장사를 한 홍길두(92) 할머니가 막국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2

◆“북한에도 막국수 있어”

막국수는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서도 겨울철에 즐겨 먹는 음식이었다. 북한에서 넘어와 50년간 춘천에서 막국수 장사를 한 홍길두(92) 할머니는 “냉면 뿐 아니라 막국수도 오래전부터 이북에 있었다”며 “남한에서 동치미에 말아 먹는 전통방식과 똑같이 해 먹는다”고 말했다. 이어 “농사를 짓지 않는 겨울에 사람들이 모여 막국수를 함께 나눠 먹었다”며 “통일이 되면 이북에 남아있는 동생들과 막국수 한 그릇 같이 먹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최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은평양냉면의 맛을 함께 느끼며 70년 가까이 단절됐던 관계 회복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홍웅기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 대표는 “먹을 것이 귀한시절 100%의 메일로 국수를 만들어 귀한 손님이 오거나 잔치에 대접하던 음식이 막국수였던 걸 비교할 때 이번 평양냉면과 의미가 같다고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과도 평화적 교역이 잘돼 강원도가 아니 한국의 음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나눌 수 있는 막국수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탈곡이 끝난 메밀은 풍구, 체 등을 이용해 낟알을 골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2
탈곡이 끝난 메밀은 풍구, 체 등을 이용해 낟알을 골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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