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미국과 친구가 되는 북한, 상상해본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쯤 상상해 보자.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일 평양을 방문한 우리 대북 특사단에게 북한 경제개발을 위해 미국의 자본투자도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물론 이와 같은 북한의 의사는 곧 이어 워싱턴에도 그대로 전달됐다. 특사단은 김정은 위원장의 미국 투자 환영 발언과 관련,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명했고,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5월 내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결단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북한의 미국 접근 의향은 최근 소원해진 정도를 넘어 ‘적대관계’로 치닫고 있는 북중관계와 무관치 않다. 평양의 야심은 “당신들이 정녕 우리를 옥죄면 우리는 미국과 손잡고 단번에 시장경제로 간다”는 것이다.  

즉 북한의 개발전략의 모델은 이제 중국이 아니라 베트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일 베트남 해군 3지역사령부 모항(母港)인 다낭으로 미 해군 7함대 소속 칼빈슨호 항공모함 전단이 입항했다. 항모 칼빈슨호는 다낭 해안에서 1㎞ 떨어진 지점에 닻을 내렸으며, 순양함 레이크 섐플레인호와 구축함 웨인 메이어호는 다낭 테엔사항에 정박했다. 전단 소속 미군 장병 3000여명이 다낭 시내로 쏟아져 들어왔으며, 곧 시내 주요 호텔 객실은 미군 장병들로 가득 찼다. 그리고 이날 오후 7시 30분 다낭을 관통하는 한(汗)강변에서 칼빈슨호 소속 악단의 공연이 시작되자, 다낭 시민 수천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노이 봉 따이 런(크게 둥글게 손을 잡자)’을 함께 부르며 열광했다. 

미 항모가 베트남에 기항한 것은 베트남전 이후 43년 만에 처음이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종신 집권을 가능케 하는 헌법 수정이 이뤄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과 같은 5일에 이뤄졌다는 사실이 눈길을 끌었다.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 패권을 견제하겠다는 베트남의 의도를 읽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에 군사동맹까지는 몰라도, 베트남 항구를 미 해군 기지로 임차하는 것을 골자로 한 미·베트남 군사협력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번에 방문한 다낭이 유력 후보지다. 다낭 항구와 공항 자체가 베트남전 당시 미군 기지용으로 건설됐다.  

베트남 해군 4지역사령부 주둔지인 깜라인도 후보지 중 하나다. 킬로급 잠수함 6척의 모항인 깜라인은 베트남전 당시 미 해군 기지였다가, 1979년 25년 임차 협약으로 소련 해군 기지가 됐던 곳이다. 당시 베트남이 소련 해군을 불러들인 이유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1979년 2월 17일 중국군이 베트남을 전면 침공함으로써 중·베트남 전쟁이 발발했었다. 그러나 러시아 해군은 베트남이 연임대료 2000만 달러를 요구하자, 2002년 5월 철수해 버렸다. 

베트남 인구는 9500만명에 달한다. 그리고 아직 높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어 곧 1억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경제성장률도 최근 6%대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7%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리고 상비군 42만명, 예비군 300만명의 지상군을 보유하고 있는데, 젊은 층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구 구성으로 병력 충원에 자신감을 보인다. 지역 방어 위주인 수도방위사령부와 7개 군관구 병력 이외에, 기동군 4개 군단을 별도로 유지하고 있다. 또, 무엇보다 프랑스·미국·중국을 차례로 격퇴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해군도 러시아제 킬로급 잠수함을 도입하는 등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제 개발과 군 현대화를 위한 도움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낼 수 있다면, ‘동남아 소(小)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북한이라고 ‘동북아의 소패권국’을 왜 꿈꾸지 않을까.

과거 미국의 교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도 미국의 경제 원조로 일어났으며, 지금도 미군 기지를 유지하고 있다는 주장이 베트남에서 힘을 얻고 있다. 물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높은 대중(對中) 경제 의존도 때문이다. 베트남의 1위 수입국은 28.6%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이다. 대부분 저가 생필품이다. 따라서 중국과의 무역 관계가 흔들리면 베트남 서민 경제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2위는 18.3% 한국, 3위는 13.8% 아세안이다. 그렇기에 아직은 중국 눈치를 보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의 대중 수출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1위 미국 21.8%, 2위 유럽연합(EU) 19.3%인 데 비해, 3위 중국은 12.4% 정도다. 마침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을 국빈 방문해 한-베트남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북한도 이제 핵무기를 내려놓으면 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길의 우선이 남북관계 발전이라면 차선책이 ‘친미국가 건설’이라는 의제로 부상하고 있는 이유다. 중국에 대한 ‘1000년 원한’을 일거에 풀어줄 북한의 결단을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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