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이번 중국 방문단의 북한 최고의 스타는 누구인가? 아마도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라는 데 별로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는 벌써 세 번째로 북한 언론에서 ‘여사’로 호칭됐다. 지난 2월 8일 북한군 정규군 창설 열병식장에 나타난 리설주를 향해 북한 언론은 최초로 여사 호칭을 사용했고, 대한민국 특사 일행 접견 시에도 여사, 그리고 이번 중국 방문이 그 세 번째이다. 북한에서 영부인을 향해 여사란 호칭을 쓴 것은 1974년이 마지막이다. 그 전까지 김일성의 부인 김성애를 지칭해 ‘존경하는 여사’란 호칭을 빈번하게 사용했지만 김정일이 그걸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자기 어머니 김정숙이 사망하기가 무섭게 그 자리에 들어앉은 계모 김성애를 평소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오던 김정일은 노동당 조직비서에 임명되기가 무섭게 ‘김성애 여사’부터 내쫓았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옛 러시아제국에서 혁명을 꿈꾸던 이오시프 주가시빌리. 폭력적인 젊은이였지만 오직 예카테리나라는 여인에게는 다정다감했다.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래도 부르고 시도 읊었다. 이오시프는 1906년 스물일곱에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예카테리나는 결혼 16개월 만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고, 이오시프는 오열 끝에 실신했다. 깨어난 이오시프는 “내게 마지막 남았던 인간적인 감정도 사라졌다”며 주가시빌리라는 성(姓)을 버리고 혁명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이 붙여준 스탈린(강철인간)이란 이름으로, 냉철하고 잔인한 독재자의 길을 걷게 된다.

독재자들에게도 아내가 있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살아가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남편에게 영향을 미친다. 남편 못지않게 독재를 휘둘러 지탄받는 아내들도 있다.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내 이멜다는 ‘부부 독재정권’을 구축했고, 짐바브웨 로버트 무가베 전 대통령의 부인 그레이스는 명품 쇼핑병으로 ‘구찌’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부인 아스마 알아사드도 마찬가지. 영국 시민권을 가진 무슬림 귀족으로 스물다섯에 알아사드를 만나 결혼한 아스마는 개혁·개방 정책을 홍보하고, 자녀들을 직접 운전해 학교에 데려다주는 소탈한 모습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기도 했지만, 2011년 내전이 발생하면서 얼굴을 바꾼다. 

시리아 국민은 아스마가 남편을 설득해 사태를 진정시키길 바랐지만, 그녀는 오히려 반군 진압을 적극 옹호해 국민을 실망시켰다. 국제사회는 그녀를 ‘지옥의 퍼스트레이디’로 부른다. 반면, 비록 남편이 독재자여도 ‘야당’ 역할을 하며 국민에게 다가가려 애쓰는 아내들도 드물지만 있다. 바레인의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국왕은 심각한 인권 침해로 국제 앰네스티본부로부터 여러 번 경고를 받기도 했으나 아내인 사비카는 여성과 어린이들의 인권 보호에 앞장서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기도 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부인 리설주를 동반해 시진핑(習近平) 주석 부부를 만나고 온 뒤 중국에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면서 검색어가 차단되기도 했다. 북한은 리설주를 ‘여사’로 칭하며 대외적으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기대하는 듯하다. 리설주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영향을 김정은에게 주게 될지 세간의 관심이 높다. 오늘날 북한에서 여전히 여사로 호칭되는 두 명의 여인이 또 있다. 물론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은 아니다.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 여사.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 여사, 또 살아 있는 이로는 유일하게 리설주 여사가 등장했다. 적어도 김정은 정권이 롱런한다면 생존 시 최고 장시간 여사로 살아갈 리설주는 행운아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리설주의 존재는 북한만이 아닌 중국에서도 꽤나 높이 평가되는 계기가 이번 중국 방문이었다고 호사가들은 입방아를 찧고 있다.

즉 이제 북한 최고의 ‘친중파’는 리설주라는 것이다. 리설주는 과거 음악공부를 위해 약 1년여 중국 유학을 해서 그런지 이번 중국 방문 중 시진핑 주석과 펑리위안 여사 앞에서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구사했다. 북한은 한때 촉망되는 가수 서은향과 황은미를 이탈리아에, 그리고 리설주와 같은 차세대 가수를 외국에 음악 공부하러 내보낸 적이 있는데 오늘 그 빛이 찬란할 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북한에는 장성택 처형 후 친중파는 씨가 말랐다고 걱정들이 많았다.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친중파라고 하지만 그 역시 무늬만 ‘중국통’이지 북경에서 별로 환영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 리설주의 등장으로 중국 인터넷은 그를 한국의 ‘송혜교’로 찬미했으며, 앞으로 북-중 간에 갈등이 생기면 북한은 그를 베이징으로 급파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예견되고 있다. 또 북한은 향후 리설주에게 여성동맹위원장이든 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든 정치권력을 부여해 그의 정치적 입지를 높여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무튼 한동안의 갈등기를 넘긴 북-중 간의 밀월기가 앞으로 얼마나 더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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