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본문과 무관함.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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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사례 속속… 극단적 선택까지

10명 중 7명 경험… 정신적 폭력 많아

전문가 ‘남성 중심적 문화’ 지적

“인식 바로잡을 수 있는 교육 필요”

[천지일보=강병용, 남승우 기자] #1. 직장인 박현정(가명, 30대, 여)씨는 무려 1년간 회사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왕따를 주도한 사람은 평소 업무능력이 좋아 회사사람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텁고 권력을 갖고 있던 회사선배 A씨였다. 박씨의 왕따 이유는 회사에서 A씨보다 업무능력을 인정받고 일처리 능력에 두각을 보인 것이 주원인이었다. 왕따를 동조한 회사동료들은 박씨에게 수시로 폭언을 하고 박씨의 실적을 경계하며 개인 업무까지도 회사동료들의 간섭과 감시가 이어졌다고 전해졌다. 따돌림에 동조한 회사동료들은 박씨에게 개인적으로 미안하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같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박씨는 말했다.

#2. 육아휴직을 사용했다가 회사업무에 복귀한 이수현(가명, 40대, 남)씨는 회사 복귀 첫날 기존의 업무와 전혀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부당한 인사라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고 회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직원들도 복귀 이후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휴가 중에도 ‘돌아오면 어떻게 된다’는 식의 전화를 수차례 받았는데 실제 보복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이씨는 회사 복귀 2주 만에 스스로 퇴사했다.

최근 특정 직업을 가리지 않고 직장 내 괴롭힘 즉 ‘왕따’ 현상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일해야 할 직장에서 왕따, 폭행, 책임 전가 등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 사례는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이를 제재할 뚜렷한 방법이 없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1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2017 직장내괴롭힘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 이상이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괴롭힘 유형은 다양해 흔히 떠올리는 폭언, 따돌림 등 개인 괴롭힘뿐만 아니라 성과를 가로채거나 일감을 몰아주는 업무 행위도 해당한다. 인권위의 실태 조사결과 직장인 4명 중 1명은 실적이나 성과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고 답했다.

또 지난 1일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8월 한 달 동안 30인 이상 사업체 직원 2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 조사’ 보고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직장인 3명 중 2명이 과거 5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직접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응답자의 66.3%가 과거 5년간 한 차례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장 최근에 당한 직장 내 괴롭힘 유형으로는 협박·명예훼손·모욕·폭언 등 정신적인 공격이 24.7%로 가장 많았고 수행 불가능하거나 업무상 불필요한 과대한 요구(20.85%), 격리·무시 등 인간관계에서의 분리(16.1%)가 그 뒤를 이었다.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들이 복수응답으로 꼽은 직장의 특징은 ‘상사와 부하 직원 간 적은 의사소통(44.6%)’ ‘많은 잔업·적은 휴식(38%)’ ‘직원들 대부분 늦게 퇴근하는 경향(35.35%)’ 순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이 상담을 요청할 상담 창구 설치는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가운데 40.1%는 “상담 창구가 설치돼 있지 않다”고 답했고, 14.5%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특히 특정 직업에서는 권력형 폭력이 관습처럼 일어나기도 한다. 간호사들의 ‘태움(간호사집단 내 괴롭힘)’이 대표적이다. 태움은 의료계에서 선배 간호사가 후배를 가르치며 폭언이나 폭행을 하는 악습으로 2005년, 2006년 지방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 2명이 연이어 자살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사회적 문제다. 지난달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일하던 신규간호사인 고(故) 박선욱(27)씨가 입사 5개월 만에 목숨을 끊은 원인으로 태움이 지목됐고 박 간호사의 유가족들은 ‘태움이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박 간호사 사망사건과 관련한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권력형 폭력과 관련해 법률 제정을 위한 움직임도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19, 20대 국회에서 직장 괴롭힘 관련 법안이 5건이나 발의됐으나 단 1건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법적 구제도 힘든 실정이다.

김혜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제주본부 법률지원센터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은 왕따 같은 개념일 수도 있고 상사가 하급자를 일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것이 될 수도 있다”며 “직장 내 괴롭힘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양한데 아무래도 성별로 나타나는 문제가 1차적으로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직장 내 상하관계와 중첩되면서 생긴다”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직장 내에서 여성과 남성의 문제로 본다면 아직 우리나라는 성평등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워낙 남성 중심적인 조직 문화들이 많다”며 “그렇기 때문에 법적으로 당연히 누려야하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남성뿐 아니라 여성조차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해결책에 대해 “처벌이나 다른 것들도 전제해 우선적으로 문화가 재생산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인식을 바로잡아 나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면서 “유년기부터 사회 전반적으로 팽배한 성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문화 개선을 위해 다양한 교육이 실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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