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흉노 토벌을 위해 한나라 사자로 파견된 장건은 흉노 출신 감보를 데리고 월지로 가다가 흉노에 붙잡혀 10년 동안 있으면서 아내도 얻고 자식도 낳았다. 행동이 자유로워진 장건은 흉노를 탈출해 대원을 지나 월지에 갔으나 대월지의 새로운 왕은 흉노에게 보복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귀국하던 장건 일행은 흉노에 또 잡혀서 일 년 만에 가족과 탈출해 무사히 귀국했다.

한나라 조정은 장건을 태중대부로 승진시키고 흉노인 감보에게는 봉사군의 직위를 주었다.

장건은 몸이 건강하고 너그러우며 신의가 두터운 사람이었다. 그 인품으로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호감을 샀다. 또한 감보는 흉노족 출신으로 사자 일행과 대월지를 다녀 올 동안 활 솜씨가 뛰어나서 식량이 떨어졌을 때에는 사냥을 해서 일행이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다.

장건 일행은 한나라를 출발할 때 백여명 이상이었으나 13년이 지나서 귀국할 때에는 장건과 감보 두 사람뿐이었다. 장건이 사자로 떠나 실제로 발을 들여 놓은 나라는 대원, 대월지, 대하, 강거 네 나라이고 정보를 가져온 주변국들만도 5~6개나 됐다. 그들은 이런 정보를 황제에게 상세한 보고서를 올렸다.

“대원은 흉노의 서남방 한나라의 서쪽에 위치하며 거리는 일만리쯤 됩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농사에 종사하며 벼와 보리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만듭니다. 또한 좋은 말을 대량으로 기르고 있습니다. 그 말은 피땀을 흘리므로 선조는 천마의 아들이라 합니다. 도시마다 성을 쌓고 집에서 기거합니다. 지배하는 도시는 70여 곳이며 인구는 수십만을 헤아립니다. 무기로는 창이나 활을 사용하며 기마전에 능합니다.

대원의 북쪽은 강거, 서쪽은 대월지, 서남쪽은 대하, 동북쪽은 오손, 동쪽은 함미와 우전입니다. 우선 서쪽 지대에서는 강은 모두 서쪽으로 흘러 서해(아랄해)로 가고 동쪽으로는 염택(로브노르)으로 갑니다. 오손은 동쪽으로 2천리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생활 풍속은 흉노와 같으며 사람들은 한 곳에 오래 사는 일 없이 가축을 따라 이동을 합니다. 활을 쏘는 전사는 수만명으로 모두 용감히 싸웁니다. 이전에는 흉노에 예속돼 있었지만 그 뒤 세력이 왕성해 현재는 이름뿐인 흉노족의 종주권을 겨우 인정하고 있을 뿐 그들이 흉노족에 바치는 조공은 거부하고 있습니다.

대월지는 대원에서 서쪽으로 2~3천리 떨어진 곳으로 규수(옥소스 강) 북쪽에 위치하고 남쪽으로 대하, 서쪽으로는 안식, 북쪽으로는 강거가 있습니다. 그들은 가축을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족으로 생활양식이 흉노와 같습니다. 활을 쏘는 전사는 대충 20만쯤 될 것입니다. 이전에 이름을 떨치던 시대에는 흉노족도 가볍게 여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흉노에서 묵돌 선우가 월지를 무너뜨렸으며, 그 다음에 즉위한 노상선우는 월지왕을 죽여 그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 월지의 생활권은 돈황과 기련산 일대였으나 흉노족의 침입으로 원주지를 포기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렇게 되자 그들은 대원 땅을 지나서 서쪽의 대하를 공격해 이를 굴복시키고 규수 북쪽에 도읍을 정했습니다. 원주지에서 채 도망을 가지 못한 나머지 주민들은 기련산의 강족이 살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 소월지라 부르고 있습니다.

안식국(파르티아)은 대월지에서 수천리쯤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안식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벼와 보리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생산합니다. 성을 쌓아 도시를 갖춘 것은 대원의 경우와 같습니다. 지배하는 도시는 수백 곳, 면적은 사방 수천리에 이르는 가장 큰 나라입니다. 규수에 면하고 있으며 교역시장이 서며 사람들은 수레, 선박을 활용해 인근 제국뿐 아니라 때로는 수천리 먼 나라와도 교역을 합니다.

은으로 화폐를 만들고 화폐 문양으로는 당시 왕의 얼굴을 사용하며 왕이 죽을 때마다 화폐를 다시 만들고 왕의 얼굴도 바뀝니다. 글을 쓰는 데는 약간 딱딱한 가죽을 사용하며 거기에다 문자를 옆으로 늘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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