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대원(중앙아시아 시르강 유역 페르가나)에 관한 일은 장건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장건은 한나라 출신으로 건원년에 동안의 하급 관리로 있었다. 그즈음 무제는 흉노족으로 항복이나 귀순해 온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흉노는 월지의 땅을 쳐들어가 왕을 죽이고 그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었다고 했다. 살아남은 귀족과 백성들은 서쪽으로 도망쳐서 흉노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도와 흉노를 공격할 나라가 당장은 없었다.

때마침 흉노족을 토벌할 기회를 엿보고 있던 한나라 무제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월지와 손을 잡기 위해 사자를 파견하기로 했다. 한나라와 월지의 중간에는 흉노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사자는 흉노족의 세력권을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됐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그 중대한 임무를 맡을 인물을 모집했다.

그때 동안의 장건은 낭의 신분으로 월지로 가는 사자로 뽑혔다. 사자가 된 장건은 당읍현의 노예였던 흉노족인 감보를 데리고 농서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의 일행은 흉노족의 땅을 지나가다가 붙잡혀서 선우에게 끌려갔다. 붙잡혀 온 장건에게 선우가 꾸짖었다.

“월지국이라면 우리나라보다 북쪽에 있지 않은가. 네가 월지에 도착할 길은 없다. 생각해 보아라. 우리가 월나라에 사자를 보낸다면 너희 한나라에서 잠자코 보내 주겠는가? 그러니 너를 죽이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알라.”

장건이 흉노의 땅에서 구속된 지 10여년의 세월이었다. 그곳에서 아내도 얻고 아이도 낳았다. 그럼에도 그는 한나라의 사자임을 증명하는 부절을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다.

흉노에서 오랜 세월 살게 됨에 따라 장건은 서서히 행동의 자유를 얻었다. 그는 기회를 보아 일행을 데리고 월지로 도망쳤다. 일행은 계속 서쪽으로 걸어서 수십일 뒤에 대원에 도착했다. 대원은 한나라의 산물이 풍부함을 전해 듣고는 전부터 한나라와 통상을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대원에서는 장건의 일행을 환영했다.

“귀공들은 우리나라에 잘 왔소. 그런데 당신들은 대체 어디까지 갈 작정이오?”

장건이 대답했다.

“우리 일행은 한나라 황제의 명을 받들고 월지로 가는 길입니다. 불행히도 흉노에게 붙잡혀 허송세월하다가 겨우 도망쳐 오는 길입니다. 왕이시여, 저희를 월지로 보내 주십시오. 저희가 무사히 월지로 갔다가 돌아올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왕에게 많은 예물을 보낼 것입니다.”

대원 왕은 그들의 말을 인정하고 안내와 통역을 붙여서 보내 주었다. 장건 일행은 강거에 도착했고 이어서 강거의 도움으로 월지에 무사히 들어갈 수가 있었다.

대월지에서는 전에 흉노족에게 왕이 죽었으므로 태자가 새 왕이 되어 있었다. 대월지는 새로운 젊은 왕의 시대가 열리면서 완전히 대하(박트리아)를 복종시켜서 종주국이 되어 있었고 기름진 땅과 외적의 침입도 없이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에게 있어 한나라는 너무도 먼 땅이었다. 그러므로 한나라에 협력해서 흉노족을 보복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장건은 월지에서 대하로 가서 자신의 뜻을 도모했으나 대월지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장건 일행은 대원에서 1년쯤 머물다가 귀로에 올랐다. 그들은 남산 줄기를 따라 걷다가 강족의 땅을 지날 무렵 또 다시 흉노에 붙잡혔다.

그리고 그곳에서 1년 동안 머물자 선우가 죽고 좌곡려 왕이 태자를 쫓아내고 스스로 왕이 됐다. 그 혼란의 틈을 타서 장건과 흉노의 아내와 일행은 한나라로 도망칠 수가 있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