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흉노의 선우 묵돌이 죽고 아들 계육이 즉위하여 선우가 됐다. 한나라 문제는 황족의 딸을 공주로 꾸며 흉노로 보냈다. 연나라 출신 환관인 중행열을 함께 보내려 하자 그가 그 임무를 그만두려 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중행열은 원한을 품고 흉노에 도착하자 곧바로 선우에게 한나라 배척에 관해 설명했다. 한나라의 물품이나 음식을 버리라고 했다. 중행열은 그렇게 건의함과 동시에 선우의 측근에게도 흉노의 인구와 가축 수를 상세히 기록하고 그 통계를 내게 했다. 그리고 한나라에 보내는 서한 양식도 고치도록 했다.

이제까지 한나라에서 흉노에게 보내는 서한은 한 자 한 치의 두루마리가 사용됐다. “황제가 삼가 흉노의 대선우에게 문안하오니 편안하신가?”라고 시작되면서 물건과 용건을 적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선우가 한나라에 보내는 서한에는 한 자 두 치의 두루마리를 사용케 했으며 봉인을 단단히 하고는, “천지가 낳으시고 일월이 세우신 흉노의 대선우가 삼가 한나라의 황제에 문안하노라. 편안하신가?”라고 거만하게 굴면서 줄 물건과 용건을 기록하도록 했다.

또한 중행열은 한나라의 사신에게는 말과 행동에 눈을 부라렸다. 어느 때였다. 한나라의 사신이 “흉노의 풍속은 노인을 천대한다?”라고 말하자 중행열이 나서서 사자를 꾸짖었다.

“그렇다면 너희 한나라 풍습으로는 젊은이가 변경 수비병으로 종군할 때 늙은 부모가 자신을 희생하여 자식에게 따뜻한 의복을 주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이지도 않는단 말인가?”

“그건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것이 당연하다면 흉노가 노인을 천대한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흉노는 일상생활 여건으로 싸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싸우지 못하는 노약한 자가 맛있는 음식을 강건한 젊은이에게 양보하는 것은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럼으로써 부자가 서로 오래도록 살아갈 수가 있다.”

“하지만 흉노는 부자가 한 집에 살며 아비가 죽으면 아들이 계모를 아내로 삼거나 형제가 죽으면 나머지 형제가 미망인을 자기 아내로 삼거나 하지 않는가? 게다가 흉노는 의관도 없으며 조정의 의례도 없다.”

“한나라의 사자여, 흉노의 풍습을 모른다면 가르쳐 주겠다. 흉노의 생계는 모두 축산으로 이룩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축의 고기를 먹으며 그 젖을 마시고 가죽을 입는다. 그리고 가축에 필요한 풀과 물을 구하기 위해 계절에 따라 이동한다. 그러므로 언제 전쟁이 터지더라도 훈련이 잘되어 있으며 평상시에는 평온한 생활을 즐길 수가 있다.

법규는 간단하여 실행하기 쉽고 군신 관계도 움직이기 좋게 구성돼 있다. 아버지와 아들 형제가 죽으면 남아 있는 자가 미망인을 아내로 맞는 것은 종족이 없어짐을 막기 위함이다. 때문에 흉노는 혈통이 끊어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한나라에서는 물론 계모나 형제의 아내를 공공연히 맞아들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친척끼리 점점 멀어지고 나중에는 서로 죽이기까지 한다. 혁명이 일어나면 황제의 성이 바뀌는 것도 이런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가 오늘날에는 나쁜 풍습만 계속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상하가 서로 원한을 품거나 시기하면서 자신들의 사치만을 좇고 그것을 위해서는 생계조차 돌보지 않는다.

한나라에서는 성 안 백성들은 의식을 농경, 양잠에 의지하고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성 밖의 백성들은 충분히 싸우지도 못하고 평소에도 생산에 쫓길 뿐 여유가 없는 것이다. 흙집에 사는 가련한 한인들이여, 자기 나라의 실정을 알았다면 이제부터는 아는 척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너는 의관에 대해서 말했지만 그거야말로 쓸데없는 물건이 아니고 무엇이냐?”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