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2년 3월 24일 발행한 최초의 한글 신약성서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전서’. (제공: 문화재청)

해방 이후 문맹퇴치와 맞물려 상생효과
‘한글성경’ 통해 글자 가르치고 전도도 
“한글 모르면 세례주지 말라는 지침도”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570여년 전 창제돼 지금은 우리 국민 누구나 사용하는 한글이 사실 정착된 지는 오래되지 않는다. 해방 전후로 급속히 퍼져나가 한글이 한국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한글성경’도 한 축을 형성했다. 본지는 한글날을 맞아 성경과 한글의 관계를 재조명해봤다.

◆한글보급·성경전파의 상생효과

선교사보다 성경이 먼저 유입돼 교인을 배출한 한국개신교 역사 속 ‘한글’은 성경의 내용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하기 위한 좋은 방편이었다. ‘사람마다 쉽게 배워 매일 편하게 사용하고자함(훈민정음 서문)’이라는 훈민정음 창제 취지 그대로 아낙네들조차 배우기 쉬웠던 한글을 통해 성경은 빠른 속도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한글보급과 성경전파라는 상생의 구조 속에서 한글성경은 우리사회의 문맹퇴치율에 영향을 끼치게 됐다.

최초로 우리사회에 선을 보인 한글성경은 1882년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주선으로 번역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다. 이후 이 성경은 1892년까지 57만 8000권이 보급됐다. 초기 기독교가 문맹퇴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이유다.

숙명여대 이만열 명예교수는 ‘한국성서운동 100년의 회고와 전망’ 논문에서 “성경이 한글로 번역, 출판돼 ‘때묻고 닳을’ 정도로 읽혀진 결과, 한국교회는 물론이고 한국사회의 개화와 근대화도 막대한 영향을 입었다”고 평가했다. 또 이 교수는 “특히 한글을 민중의 문자로 정립시키고 문자해독율을 문명국 수준으로 높인 것은 기독교의 공헌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성경의 한글 번역과 그 보급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만열 교수는 “기독교가 한글해독(문맹퇴치) 운동에 앞장 서 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과소평가돼 왔다”며 “성경을 읽도록 하기 위한 교회의 노력은 교회마다 한글교실을 마련했고, 먼저 해독한 신자들은 선생이 돼 가르쳤으며, 권서들은 성경을 보급하기 위해 때로는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가 돼야 했다”고 주장했다.

◆“권서, 무지·문맹의 사슬 끊는 역할”

이만열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의 말을 한글로 정착시키는 데 성경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글 성경을 만든다는 것은 곧 통일된 맞춤법을 필요로 했고, 그런만큼 우리말 표기에 대한 맞춤법 연구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격려했다는 해석이다. 또 조선어학회 제정의 맞춤법안이 대중화되는 데는 성경출판에서 그것을 채용하느냐의 여부에 큰 영향을 받았으므로 한글성경 출판은 우리말의 맞춤법 통일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1938년 개역성경이 출판되고 난 뒤에 조선어학회는 성경이 다시 제정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채용해줄 것을 요청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여줬는데, 이는 성경의 맞춤법이 한글문화에 미칠 영향과 파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1900년경 북감리회선교사 존스의 보고서에서도 성경을 가르치는 이들이 한글을 함께 가르쳤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존스는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전하는 ‘권서’와 관련해 “권서들은 읽는 법을 가르쳐주고 스스로 하나님의 거룩한 책의 영광을 보게 함으로써 자기 백성들을 얽매고 있는 무지와 문맹의 사슬을 끊도록 지속적으로 영감을 불어넣는 자들”이라고 평가했다. 또 존스는 당시 자신의 목회 아래 있는 1500명의 개종자들 중 글을 읽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나마 신약성경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강조했다.

독립협회를 조직했던 윤치호도 성서보급 기관인 성서공회의 한글보급 운동에 대해 “우리 교도가 성서공회에 대하여 우리의 방언으로 번역한 성서를 위해 감사하는 것이 의례이지마는 만일에 우리가 비교인일뿐더러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이 되었더래도 성서공회가 조선의 자모(字母)를 부활시켜 유행케 한 큰 사업만을 위하여 감사하여야 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당시 교회들의 상황을 전북 전주 서문교회 최고령 장로인 최창선(85) 장로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최 장로는 “교회에서는 한글 자음과 모음 판을 제작해서 교인들에게 가르쳤다”며 “심지어 한글을 모르면 세례를 주지 말라는 말까지 했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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